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같은 선택, 달라진 삶 ③ 제3의 길을 택했다

기사승인 2020.05.10  17:11:58

공유
default_news_ad1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윤 모 씨(28) 취재는 늦은 밤에나 가능했다. 6시간이라는 시차 때문이다. 윤 씨는 육군 부사관이다. 전 연기 장병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복무한다.

당시 이미 전문하사를 지원한 상태였다. 병사로 있다가 직업군인으로 신분을 바꾸는 제도다. 합격발표를 앞두고 상황이 터졌다. 두려웠지만 군인이라는 꿈을 위해 전역 연기를 결심했다. 전역 연기란 꿈을 위한 발판이기도 했다.

윤 씨에게도 특채 제안이 왔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윤 씨가 웃으며 말했다. SK·롯데 인사과에서 연락 왔지만 바로 사양했다. 군인이 적성에 맞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남수단에 파병돼 한빛부대 10진, 11진에서 복무한다. 굴삭기를 운용하면서 민군작전 및 도로재건 활동을 한다.

특채를 거절한 윤 씨가 다른 혜택은 볼 수 없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병사 때 업적이라 간부로서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아쉽지는 않은지 물었다.

“물론 명예로운 업적을 글 한 줄로도 남기지 못하는 현실 자체는 아쉽죠.” 그렇지만 대가를 원했던 행동이 아니었기에 그 정도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평가했다. 윤 씨는 잊힌 일이라 생각했는데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장윤수 씨(29) 주변에는 유독 사람이 많아 보였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전역 연기 장병 가운데 가장 먼저 답이 왔다. 퇴근이 늦어 연락이 늦었다며 미안해했다. 그는 말끝마다 ‘실례인 듯해서’라며 양해를 구했다. 취재팀에게 꼬박꼬박 ‘기자님’이란 호칭을 붙였다. 유일했다.

본가가 경기 북부(동두천시)에 있어서 마음이 더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북한과 가깝다 보니 목함지뢰 사건 터졌을 때도 가족 생각이 먼저 났어요.”

장 씨는 군대에서 전역일이 비슷한 동기들과 동고동락했다. 28보병사단 80연대 2대대 장윤수, 윤진상, 박진성. 전역 연기도 함께했다.

페이스북에서 동기들과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셋이서 짧은 머리에, 빳빳한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특채 장병을 대상으로 했던 대기업 면접장에서 찍었다고 한다.

장 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SK본사가 아닌 협력업체였다. “SK는 저만 지원한 걸로 알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SK도 아니지만.”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왜 SK를 선택했냐고 물었다. 그는 나이를 이유로 들었다. “스물넷, 정말 어렸을 때였어요.” 군대 보직이 중대 통신병이기에 SK텔레콤 같은 통신사가 잘 맞을 것 같았다. 산업 이해의 폭이 보다 넓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장 씨는 당시 전역 장병에 관한 기사를 똑똑히 기억했다. 대기업에서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원하던 직무가 아니었다. “처음에 저는 SK하이닉스를 지원했거든요. 근데 바로 짤렸죠.” 장 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까지 지원한 직무에 배정받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다. 장 씨가 입사한 곳은 현재 SK 계열사로 분류되지만 당시만 해도 ‘네트워크 ONS’라는 SK 자회사였다. 또 내근직을 희망했지만 배정받은 일은 현장직이었다.

그는 네트워크 ONS(그는 이곳을 끝까지 SK라 부르지 않았다.) 남양주 품질개선팀에서 4년가량 근무하고 퇴사했다. 5년 전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후회하는 점은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제일 큰 아쉬움은 제가 만약 어릴 적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좋은 대학에 가서 SK 하이닉스에 입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에요.” 장 씨는 애당초 특채를 바라고 전역을 연기하지 않았기에 더이상 미련은 없다고 답했다.

‘최선을 다해도 미련이 남고, 실행하지 않으면 상상으로 남는다.’ 그가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남긴 글귀다. 분명 그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켰다. 그때 나이 스물넷이었다.

▲ 전역 연기 장병들이 정부와 군에서 받은 표창장과 취업 추천서 (출처=이한얼 씨 제공)

배정현 씨(27)는 강원 고성에서 복무했다. 밤에는 지하벙커에 들어가 총을 들고 자곤 했다. 동기 김아진, 정승환, 김건우, 이태호, 박병선, 이현국, 강민석과 함께 전역 연기를 결정했다.

배 씨가 있던 22사단에서 전역 연기 장병이 가장 많이 나왔지만 87명의 특채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2차로 전역을 연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배 씨는 군대 체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역 연기를 신청하면 육군 본부랑 가까운 부대는 바로 처리된다. 예하 대대, GOP 같이 멀리 있는 부대는 같은 날 신청해도 바로 처리되지 않는다. 당시 전역을 연기한 장병은 모두 100명가량 됐다고 한다. 부대 위치에 따라 전역 연기에 따른 관심과 혜택이 달라진 셈이다.

처음에 22사단은 표창조차 받지 못했다. 똑같이 신청했는데 왜 처우가 다르냐는 불만이 나왔다. 그제야 육군본부가 참모총장을 만나게 했다. 참모총장은 표창과 함께 취업추천서를 작성해줬다. 하지만 대기업 특채에서는 제외됐다.

아쉽지 않은지를 묻자 제안받더라도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장이 안 되잖아요.” 바로 취업한다는 건 고졸 신분으로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 씨는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선 아무 경쟁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한얼 씨(29)도 배 씨처럼 특채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 경우다. 이 씨는 1포병여단 3포병단에서 전역 연기를 결정했다. 롯데·SK로부터 특채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채용설명회도, 면접도 참석하지 않았다.

“가더라도 안 좋게 끝날 걸 알았어요.” 당시 대기업이 ‘고졸’에게 좋은 자리를 준다고 믿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긴 후에는 특채에 대해 잊고 살았다.

배정현 씨는 취업추천서 한 장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래서인지 실제 취업추천서를 활용한 적이 없다. 대학에서 임상병리를 전공했다. 이제 막 졸업한 그는 병원 근무를 앞두고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임현철 씨(28)의 말은 이렇게 시작할 때가 많았다. 냉정한 시각을 좋아하는 그도 2015년 8월에는 달랐다. 화가 많이 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북한이 도발했던 때는 말년휴가 전날이었다. 여자친구를 만날 계획이었다. 중대에서 혼자 전역을 연기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북한한테 열 받아서 (전역연기) 한 거에요. 내일 당장 휴가 나가야 하는 데 못 나가니까.” 말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임 씨가 기억하는 상황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그는 ‘포장하자면’ 대의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포장하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5년 전의 선택을 스스로는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주변 반응은 뜨거웠다. 상황이 끝나자 그토록 원했던 휴가를 나갔다.

이후 바빠졌다. 고향인 충북 진천 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전역을 연기한 장병이어서다. “국방부 행사도 불려 나가고…. 아니 초청받고, 지역에서도 각각 수상하곤 했습니다.”

임 씨에게도 특채 제의는 예외가 아니었다. SK그룹과 롯데마트에서 입사를 제안했다. SK NSOK를 선택했다. SK 계열사인 SK텔레콤의 자회사다. 그는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해 7개월 만에 퇴사했다.

임 씨에게 특채 입사한 기업을 퇴사한 장병 소식을 전했다. 회사 내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는지 물었다. 임 씨는 또다시 냉정했다.

“애당초 제가 입사한 곳은 그런 특채자를 아니꼽게 생각할 규모조차 아니었습니다.” 홍보와 달리 입사한 회사는 SK와 직결되는 곳은 아니었다. 중소기업 수준의 회사였다고 기억했다.

임 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봤을 때 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전역을 못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요.”

아무런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후회를 하는 게 있다면 입사기회를 얻기 전에 저 스스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제자신에 대한 후회인 거죠.”

임 씨에게 전역 연기자로서 지금 복무 중인 장병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냉정했다.

“냉정하게 보면 (군대에서) 적지 않은 나이를 쓰는 건데 군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으면, 좀 더 그 시간을 아깝지 않게 썼으면 하는 거죠.” 임 씨는 여전히 5년 전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봤다.

지난 2개월간 취재팀은 전역 연기 장병 87명 가운데 69명을 접촉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생긴 안보위기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선택했다. 젊은 날의 선택은 삶을 여러 갈래로 변화시켰다.

특채는 특별채용의 준말이다. 채용 절차를 단축하거나 처우를 우대한다는 뜻을 담는다. 결과적으로 좋은 직장을 얻은 장병이 있지만 콜센터, 휴대폰 판매직을 특채 결과로 보기는 힘들었다.

이에 대해 원태재 국방부 전 대변인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장병들을 기업홍보에 이용한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해당 장병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유능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처음부터 당사자 능력에 맞는 직책을 검토하고 제안했어야 했다.”

국방부의 무책임한 태도도 함께 비판했다. 장병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기업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취업조건을 검토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육군훈련소 25연대에서 조교로 복무한 장한 씨(31)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전역 연기 장병의 태도를 높게 사면서도 특채에 대해선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조직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기업에서 바라는 인재상과 부합할 때에만 가능한 일 아닐까요?” 기업의 인재 채용에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K의 입장은 어떨까. 하이닉스를 희망한 남해성 씨는 적성시험 결과 콜센터에 배정됐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 인사팀은 “공채와 동일한 프로세스로 직무역량에 맞는 직무가 배치됐다”고 답변했다.

홍보실의 김상민 부장은 원치 않은 직무가 배정된 점에 대해 “힘들었을 마음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전역 연기 장병 3명이 2019년 하이닉스에 입사했다. 올해 졸업 예정인 3명에게도 취업을 안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지주 홍보실의 이경수 수석은 “직무가 한정되니 일반 지원자도 자신이 원하는 직무에 배치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지원자와 소통을 강화한다면서 “앞으로도 국가에 기여한 인재에 대해 취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개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건국대 채성준 교수(군사정보학과)는 전역 연기 장병을 위한 보훈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일부 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하고 폐기한 측면이 있다.” 유사한 사례를 대비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예우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법 상 의무복무 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은 두 가지다. 채용시험 응시 상한 연령 연장과 호봉과 임금 결정 시 군복무 기간의 근무경력 포함이다. 국가보훈처에 문의했더니 전역 연기 장병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 지원 사항은 없었다.

“They deserve it(그들은 자격이 있다).” 서경대 기노경 교수(군사학과)는 미국의 보훈 철학을 이렇게 언급했다. 국가로부터 특별한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도 이와 같은 시각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 교수에 따르면 최우선적으로 국가·국민 차원에서 존경의 예를 다할 필요가 있다. 희생 장병에게 예우를 다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 항공사는 제복 입은 군인에게 좌석을 우선 배려한다.

“이거 기사 나가요?” 취재가 끝나갈 무렵, 신명준 씨가 물었다. “웃긴 게 2015년 이후 16년, 17년, 18년, 19년 매년 다른 기자한테 연락이 왔어요. 올해는 지나가나 싶었는데 더 빨리 왔네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신 씨는 자신이 콜센터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역 연기 특채의 이면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러 차례 인터뷰했지만 기사는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전역 연기 장병의 목소리가 그렇게 묻혔다. 5년 동안. 취재팀은 반드시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사민·지윤수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