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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선택, 달라진 삶 ① 전역 연기, 인생이 바뀌었다

기사승인 2020.05.10  17: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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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쉽게 잊는다.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더라도.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더라도.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전역 장병을 안아주는 사진이 화제가 됐다. 하재헌 예비역 중사였다. 그는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었다. 국가보훈처가 하 중사를 전상(戰傷) 처리할 근거가 없다며 공상(公傷) 처리하면서 그는 다시 주목을 받았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전상’은 적과의 교전이나 이에 준하는 작전 수행 중 입은 부상을 말한다. ‘공상’은 교육·훈련 또는 그 밖의 공무 중 입은 부상을 의미한다.

그는 재심 끝에 전상 판정을 받았다. 기사를 읽다가 5년 전에 북한 도발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장병 2명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를 밟았다. 2015년 8월 4일이었다.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했다. 보름 뒤에 북한은 경기 연천군 28사단의 대북 확성기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전군에 최고경계태세가 내려졌다.

취재팀은 5년 전 기록을 더 찾았다. 이때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장병은 하재헌 중사뿐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87명이 전역을 연기했다.

젊은이들의 선택을 국가가, 사회가 격려했다. 이들 장병은 대통령을 만나고 포상을 받았다. 민간기업도 나섰다. 특별채용 기회를 준다고 했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었던 중앙일보 김민석 논설위원에게 그때 상황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김 위원은 남북충돌 위기에서 전역을 연기한 장병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국민의 마음을 끌었고, 그 결과 온 국민이 단합된 상태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할 수 있었다.” 5년 전 기사에 나온 장병들은 대기업 면접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반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씁쓸한 뉴스가 나왔다. KBS 인터넷판에 따르면 특별채용을 희망했던 37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판매·영업·콜센터 같은 곳에서 근무했다. 또 대기업 본사가 아니라 자회사나 계열사에서 근무했다. 2개월 뒤의 매일경제 기사는 장병 3명이 회사에 잘 적응하며 성과를 보인다고 전했다.

궁금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5년이 지난 지금 87명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첫 보도처럼 좋은 직장에 취직해 전역 연기 장병으로서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을까. 아니면 처음에 손을 내밀던 국가도, 기업도 이들을 잊었을까. 취재팀은 궁금증을 직접 풀기로 했다.

취재팀은 전원 여성이다. 군대가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20대 청년에게 군 복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군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입대를 앞뒀거나 복무 중이거나 전역한 23명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국가 위기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겠습니까?

이 중 22명이 전역을 연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군대에 남을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익명을 요청한 취재원은 3년 전 의경으로 제대했다. 그는 “전역 연기를 해도 내게 이득이 될 것이 없다”며 “군에 있으면 개인이 손해만 볼 것”이라고 말했다.

1군단 1포병여단에서 복무 중인 장병은 “군대에서 겪은 안 좋은 경험이 많아서 하루라도 더 남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스스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전역을 연기하겠다고 답변한 취재원은 아직 입대하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전역 연기는 가장 마지막까지 고르지 않을 법한 선택지였다.

전역 연기 장병은 87명. 기사에 나온 이름, 소속, 그리고 사진을 활용해서 한 명씩 찾아 나섰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검색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의 계정을 하나씩 눌러 얼굴을 대조하고 이력을 확인했다. 동명이인인 경우도 있었고 당사자를 찾아내도 연락을 안 받을 때도 있었다. 어렵게 얻은 연락처는 없는 번호이거나 수신정지 상태이기도 했다.

‘1년 전 페이스북으로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사진을 봤다’는 증언에 백화점에 며칠 동안 계속 연락했다. 어느 지점에서 근무한다는 기사 한 줄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해당 점포에 물으니 지점을 옮긴 뒤였다. 새 직장을 통해 취재원과 겨우 연락했다. 이런 방법으로 69명의 사연을 들었다.

전역이 이틀 남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하루하루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이때 북한이 포격 도발을 했다. 당황스러웠다. 하필 전역을 앞두고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 순간 함께했던 부대원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는 북한이 공격하면 바로 반격해야 하는 부대였다. 그렇게 문준혁 씨(27)는 전역을 연기했다.

문 씨는 자신의 결정을 당연하다고 표현했다. 당시 그는 예상보다 크게 이슈가 돼서 놀랐다고 한다. “사실 그때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겠다고,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부대에서 맞 후임과 가장 친했다. 문 씨는 11월 군번, 후임 조대건 씨는 12월 군번이었다. 전역을 연기할 때도 혼자가 아니었다. 평소처럼 후임에게 물었다. ‘나 전역 연기할 건데 너도 할래?’라고.

당연한 결정 뒤에는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있었다. “좋은 결정 했다고, 너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진짜 좋은 결정 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어머니는 당연히 걱정했다. 그러나 군인 가족이라서인지 어머니 역시 아들의 선택을 이해했다.
다행히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이 종료됐다. 문 씨는 전역예정일이었던 2015년 8월 25일에서 하루 늦은 26일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하루가 인생을 바꿨다.

“갑자기 뉴스에 뜨더라고요. 대기업에서는 우리를 취업시켜준다고 하고요.” 부대 간부는 자진해서 했던 선택에 대해 국가가 알아줬다며 칭찬했다. 용기 있는 결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말이다.

그는 여러 곳에서 입사 제안을 받았다. 크게는 롯데·SK와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여러 중견기업까지. 당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이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회사 모두 학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안심시켰다.

“지금 당장 안 와도 된다고, 자퇴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문 씨는 지난해 2월 대학을 마치고 롯데마트에 입사했다. 후임인 조대건 씨도 문 씨의 뒤를 따라 지난 가을 SK하이닉스로 입사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당시 국방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육군참모총장 상을 받는 등 자신의 군 생활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축하 자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엄청난 기회를 받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취업 쪽으로 제일 큰 보상을 받았어요.” 그는 입사 지원부터 시작해, 면접을 통해 적합한 직무를 최대한 맞춰주는 회사에 크게 만족했다.

문준혁 씨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다. 문정훈 씨(29). 그는 롯데하이마트에서 근무 중이다. “사실 장사를 하려고 했어요. 제대하면 형이랑 치킨집을 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는 중에 롯데에서 연락했다. 더 좋은 조건이기에 바로 입사를 결정했다. 개인사업자보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편할 것 같았다. 전역 1주일 만에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회사는 집과 가까운 하이마트 의정부점에서 일하도록 배려했다. 올해는 쌍문점으로 옮겼다. 문정훈 씨 또한 자기 선택에 대해 지금까지 만족한다. 가끔 마주치는 롯데하이마트 사장은 전역 연기 장병인 문 씨를 지금도 기억한다. “이동우 대표인데, 안 까먹고 있더라고요. 절 잊지 않고 아는 척을 할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 SK의 채용 설명회(출처=조선일보)

5기갑여단에서 복무한 김동희 씨(29)는 SK에 입사했다. SK네트웍스 워커힐에서 호텔 객실 관리를 맡았다. 역시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 SK라는 회사가 자신을 믿고 채용한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은 ‘이거 안 했으면 뭐 했을까?’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라며.

김 씨는 도전 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회사도 그의 열정에 부응했다. 채용 당시 그는 무엇인지 잘 모르고 회사에서 시키는 적성검사를 많이 받았다. “본인이 맞는 쪽으로 뿌려진다고 해야 하나? 저만 호텔로 오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호텔에 맞는 사람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희망직종을 적어낼 때 호텔을 떠올린 적이 없다. 먼저 능력을 알아본 곳은 회사였다.

인사팀장이 검사결과를 보고 호텔 쪽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잘 맞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회사의 제안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현실이 됐다.

대기업만 전역 연기 장병의 적성을 찾는 데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전문균 씨(28)는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아무래도 제가 뮤지컬을 전공해서 일반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동성그룹은 제 적성에 최대한 맞는 부서에 배치해줬습니다.”

대학을 2017년에 졸업하고 이듬해 여름, 동성그룹 HR팀에 입사했다. 사 측은 지속적인 외부교육을 통해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게 도와줬다. 전 씨는 임직원 간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는 기업문화를 담당한다.

김동희 씨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동기들이 콜센터나 판매직에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지. 김 씨는 그런 불만이 실제로 있었냐고 취재팀에게 되물었다. 놀란 눈치였다.

“전혀 없었어요. 동기들 거의 대부분이 SK로 갔어요. SK는 아직 그런 것 없는 것 같은데? 왜냐면 회장님이 늘 강조하는 게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요.” 김 씨는 회사 분위기도 실제 그렇다고 생각했다.
김 씨도 회사생활이 처음부터 즐겁지만은 않았다. “초기에는 힘들었어요. 새로 들어온 후배들은 유학까지 갔다 오고.” 그는 외국어를 못하는 수준에서 입사했다. 나아지기 위해 남들보다 항상 노력한 이유다. 회사도 김 씨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는 조기진급 대상자가 됐다.

김 씨도 전문균 씨처럼 회사가 기회를 준 점에 고마워했다. 당시 그는 제대 날짜가 다가오자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막막하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특별한 꿈도 없었다.

하지만 입사해 새로운 적성을 찾고,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생활하다 보니 전역 연기가 저에겐 큰 기회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한 선택이었다고 회상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김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잖아요. 저희는 일종의 낙하산이기도 하고. 선배들이 먼저 안 도와주고 그런 건 스스로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특채로 얻은 근무환경에 아쉬움이 있다면 장병 스스로 감당하고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민·지윤수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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