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문제는 작업복에 묻은 유해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만난 노동자 대부분은 작업복 세탁을 ‘해주면 좋은 일’ 정도로 인식했다.

전국을 오가며 일하는 플랜트 노동자 김모 씨(60)는 “나뿐만 아니라 동료도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복지 체계가 잘 된 회사가 세탁까지 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중앙 노조에서는 추락사, 끼임사와 같이 눈에 보이는 문제만 시급한 의제로 여긴다. 작업복 오염·세탁 문제는 뒷전이다. 나현선 민주노총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중앙 (노조)에서 작업복 세탁만 요구안으로 만든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방분야에서는 소방방재청이 나섰다. 2013년부터 작업복 오염의 심각성에 주목해 세탁 문제를 공론화했다.

소방방재청은 한성대에 의뢰한 연구(2013년)를 통해 방화복에 남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증명했다. 소방방재청은 미국 국립소방청 기준인 NFPA 1851을 참고해 세탁환경 개선을 추진하는 중이다.

노동계에서도 중앙 노조가 중심이 돼 ‘씻을 권리’를 주장한 적이 있다. 민주노총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환경을 지키려면 환경미화원도 지켜주세요’라는 토론회를 2010년 주최해 환경미화원의 작업복 오염 문제를 제기했다.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환경미화원 작업복 소매에는 13만3600마리, 바지에는 9만1700마리의 박테리아가 산다. 터미널 화장실 변기(3800마리)보다 소매는 약 35배, 바지는 약 24배나 더 비위생적이다.

그럼에도 환경미화원 55.3%(1055명 중 583명)는 씻지 않고 퇴근했고, 67%(1055명 중 711명)는 작업하던 옷을 입고 집에 갔다.

같은 해 10월 민주노총과 공공노조는 ‘환경미화노동자의 씻을 권리 보장 촉구를 위한 국민캠페인단’을 출범했다. 이후 2012년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에 작업장 내 샤워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소방공무원의 ‘방화복 세탁 환경 개선’과 환경미화원의 ‘씻을 권리’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했다. 중앙이 주축이 돼 나서자 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덕분에 현장 조사와 연구가 체계적으로 진행돼 관련법 신설까지 이어졌다.

조승규 노무사는 작업복 세탁 문제에 대한 노동계의 인식이 더딘 이유로 정보의 폐쇄성을 꼽았다. 그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를 돕는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산업계 전반의 정보가 투명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작업장에서 MSDS 교육을 형식적으로 해서 그렇다. 노동자는 교육을 통해서만 취급물질의 종류와 유해성, 대처 요령을 알 수 있다. 산안법은 교육 의무와 시기를 규정한다. 사업주가 노동자를 채용하거나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유해성 수준이 바뀔 때마다 교육을 해야 한다.

어느 근로감독관에 따르면 MSDS 교육에 대한 관리·감독은 1년에 1회 정도만 한다. 이마저도 산업계 전반의 다양한 안전 기준을 살펴야 한다. MSDS 교육에 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조 노무사는 “MSDS를 작업장 구석에 비치해두는 데 그치거나, 교육 시간을 작업 현장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자리로 이용하는 회사도 있다”고 했다.

용접노동자 조기형 씨는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은 잘 안 되고 있다. 추락하고, 압사당하는 것들은 교육받는데 화학물질에 대한 교육은 안 받는다”고 말했다.

심각성을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취급 물질이 노동자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어서다. 조 노무사는 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은 화상처럼 물리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퇴사 이후에 발병하는 경우도 있어 인과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흡한 인식에 비해 화학물질이 가져다주는 유해성은 매우 심각하다. 조 노무사에 따르면 피해자 대부분은 암, 희귀질병을 얻었다. “상담 도중 돌아가시는 분도 많아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려면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세탁권으로 보는 노동자 계층 구조

현장의 위험은 작업복이 고스란히 흡수한다. 위험을 조금이라도 털어낼 수 있느냐의 여부는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원청과의 고리가 약해질수록 노동자가 맞닥뜨려야 할 위험이 커진다.

김태곤 씨(49·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여수지부 노동안전2국장)는 대기업 작업장에서 일한다. 샤워·세탁시설이 있지만 이용할 수 없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유해물질이 묻은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하는 이유다.

그는 건물 벽과 파이프에 단열재를 시공·해체하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석면, 유리섬유, 미세먼지가 생긴다. 작업복에 이런 물질이 묻고 잔류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섬유가 특히 위험하다. 김 씨는 유리섬유가 피부에 박히면 고름이 차고 피부병이 생긴다고 했다.

회사가 작업복을 세탁해주지 않아 김 씨는 테이프로 유리섬유를 대충 떼어내고 집에서 세탁한다. 그는 “작업복만 따로 세탁한다고 해도 (유리섬유는) 일상복에 옮겨 묻는다”며 “아이들 옷에 묻어나 피부병을 일으킬까 걱정된다”고 했다.

김 씨의 사례는 ‘위험의 외주화’의 전형이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임에도 고용 형태 때문에 작업복 세탁의 책임을 고스란히 진다. 사측이 세탁권을 보장해주지 않아 노동자가 위험으로 내몰린다.

대기업 노동자의 작업복은 회사가 세탁한다. 자체 세탁시설을 갖추거나 위탁업체와 계약해서 세탁하는 방식이다.

노동자가 지정된 위치에 작업복을 벗어 놓으면 세탁업체가 수거해서 세탁한 뒤 돌려준다. LG하우시스 청주공장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근무했던 김진혁 씨(27)는 “세탁물 수거함에 작업복을 벗어두면 나중에 돌려받았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작업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 김모 씨(60)는 집에서 작업복을 세탁한다. 그는 플랜트 업계 종사자로, 기계 정비 일을 한다. 플랜트 업계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분야로 꼽힌다. 김 씨는 “(비정규직 동료들) 대부분이 스스로 세탁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서도 차이가 있다. 도급이 심화될수록 원청의 책임이 옅어진다. 최병률 씨(45)는 충남 당진시 대기업 제철 공장에서 5년 동안 일했다.

그는 “정규직과 1차 하청 노동자만 사내세탁소를 이용할 수 있다. 외주, 즉 2, 3, 4차 하청 노동자는 이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40)는 “제철소의 세탁소를 누구는 이용하고 누구는 이용할 수 없는 건 차별”이라고 했다.

영세 사업장은 세탁 책임은 물론 작업복 구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김성혁 씨(28)는 60명이 근무하는 전기회사에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일했다. 발암물질이 발생하는 도색 작업을 했다.

회사로부터 작업복 상의만 받았다. 하의를 비롯한 나머지는 김 씨 스스로 마련했다. 그는 “일상복과 작업복의 구분이 없어서 작업할 때 입었던 옷을 생활복과 함께 세탁기에 돌릴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기업과 정규직.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세탁권을 온전히 보장받는다. 대기업 작업장에서 일해도 비정규직이면 안 되고, 정규직이더라도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면 누릴 수 없다. 산업 현장에서 세탁권은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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