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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위험을 입는다 ① 집으로 옮기는 유해물질

기사승인 2020.05.17  1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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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노동의 흔적은 옷에 남는다. 작업복에 묻은 먼지와 기름때는 고된 노동의 상징이다. 아무리 털어내고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작업장의 흔적이 있다.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게 스미는 석면, 벤젠, 황산 등 화학물질이 그렇다. 작업복에 벤 화학물질은 노동자의 호흡기와 피부에, 노동자의 가정에 차례로 옮겨 간다.

모든 작업장에는 ‘안전제일’ 문구가 붙어있다. 여기서 안전은 노동자가 추락하고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는 일을 방지하는 데만 국한된다. 일상의 안전은 간과된다.

눈에 띄는 위험에 비해 사소해 보이는 위험은 노동자의 일상을 조용히 위협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은 위험은 노동자의 가정까지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에게는 ‘세탁을 요구할 권리(세탁권)’가 필요하다. 회사에 작업복을 세탁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노동자 개인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권리이자, 직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조기형 씨(56)는 큰 딸이 아토피를 앓는 게 자신의 작업복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박의장업체에서 용접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회사에는 세탁기가 없다.

20년 동안 아이들의 일상복과 자신의 작업복을 함께 빨았다. 작업복 위에 입는 피복은 용접 불꽃을 막아주는 역할만 할 뿐 유해물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작업복에는 유해물질이 계속 쌓였다.

“10년 전쯤 세탁기를 뜯어봤어요. 완전 경악했죠. 용접 기구에 묻는 물질이 가득했거든요. 기름때, 미세먼지, 쇳가루, 페인트 가루, 연마 가루 같은 것들이요.” 그날 이후로 조 씨는 작업복을 발로 밟아 세탁한다. 밟을 때마다 검은 물이 나온다.

용접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 가스와 각종 화학약품이 결합된다. 정확히 어떤 화학약품을 사용하는지는 모른다. 용접 흄(용접 과정에서 생기는 평균 0.3∼0.4㎛의 미세입자)이 발생하는 작업이라 유해하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는 작업복을 아이들 옷과 같이 빨았던 지난날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작업복에 묻은 물질들이 우리 애들 건강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 걱정이 들죠….”

▲ 현장의 화학물질은 작업복에 묻는다. (사진 제공=조기형 씨)

전남노동권익센터가 2020년 2월 3일부터 2월 10일까지 여수국가산업단지 플랜트 업계 노동자 2789명을 조사한 결과. 95.2%(2655명)가 작업복을 가정에서 세탁했다. 여수국가산업단지는 3대 화학산업단지(여수·울산·서산) 중 하나다. 사업장 대부분(93%)이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한다.

노동자는 집에 있는 세탁기로 작업복을 세탁한다. 작업복에 묻은 유해물질은 세탁기에 남는다. 같은 세탁기로 가족의 일상복을 세탁한다. 작업장에서만 사용하고 없어져야 하는 유해화학물질이 작업복을 통해 노동자들의 가정에 옮겨가는 과정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 노동자는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하면서 가족의 위생과 건강을 염려했다(43.9%). 세탁기 안에 남는 기름때와 잔존 유해물질도 걱정했다(41.6%).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임모 씨(37)는 경기 안산시의 피혁 업체에서 근무한다. 작업복을 퇴근길에 가져간다. 회사에서 세탁해주지 않아서다. 작업장에는 별도 세탁시설이 없다. 임 씨는 기숙사나 집에 있는 세탁기를 이용한다.

임 씨가 다루는 화학물질은 이소프로필알코올(IPA), 시너(thinner)다. IPA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서 인화성 액체 구분2, 안구 자극성 구분2, 특정표적장기 독성 구분3, 흡인 유해성 구분2로 등재된 유해화학물질이다.

구분1에 가까울수록 인체에 유해하다. MSDS는 IPA 흡입을 피하고 오염된 경우 의복을 폐기하라고 안내한다. 취급 직후에는 ‘세탁 및 샤워’를 하라고 권한다.

MSDS는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취급서다. 산업안전공단(이하 공단)은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MSDS를 제공한다. 화학물질별 유해성, 응급조치 요령, 관리 방법을 담았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은 MSDS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개별 기업은 사용하는 물질만 추려 사업장의 MSDS를 작성한 뒤, 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하고 산업 현장을 관리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유해성, 위험성을 기준으로 MSDS의 화학물질을 7종으로 나눈다. 이중 금지·허가·관리대상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회사에 세탁 책임이 발생한다. 임 씨가 근무하는 업체도 관리대상 유해물질인 IPA를 취급하기에 작업장에 세탁시설이 있어야 한다.

▲ 화학물질 종류

이철갑 조선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임 씨의 사례에 우려를 나타냈다. IPA와 시너 같은 휘발성 물질은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다. 휘발돼 사라지는 물질로 여기는 탓이다. 이 교수는 “휘발성 물질도 섬유가 푹 젖을 만큼 오염됐을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화학물질이 묻은 작업복의 위험을 경고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작업복을 다른 의류와 구별해서 세탁하고 보관하도록 권고한다. 세탁 방식과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연히 (화학물질이 작업복에) 잔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염된 작업복을 작업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 김원 노동환경연구소 실장은 “오염된 작업복을 현장에서 1차 세탁하는 조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 가정의 피해를 우려했다. 특히 가정주부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는 취급 물질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가 있지만, 가정주부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플랜트 업계 노동자인 남편의 작업복을 세탁하는 주부 장모 씨(59)는 “건강 문제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작업복을 물에 담가 놓으면 까만 먼지와 기름이 새까맣게 뜨기는 하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해화학물질을 직접 다루지 않는 가정주부가 관련 질환에 걸린 사례가 있다. 천안 순천향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의 석면 관련 연구(2017)에 따르면 석면 노출 피해자 411명 중 189명(46%)이 직업과 무관한 경로로 악성중피종을 얻었다.

이 중 17명은 석면 취급 노동자 가족이다. 가정주부만 15명이다. 석면 취급 노동자와 같이 살거나 이들의 작업복을 세탁하면서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악성중피종은 석면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발병하는 암으로, 환자 대부분이 사망에 이른다.

작업복을 세탁하러 무인 세탁소로 향하는 노동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30대 노동자는 무인 세탁소에서 사비로 작업복을 세탁한다. 그는 경기 안산시의 기초무기 화학물질 제조업체에서 근무한다. 분말 형태의 초미립자 물질을 다룬다.

회사는 사내 세탁기를 최근에 없앴다. 세탁된 작업복을 직원이 찾아가지 않아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는 “(오염을 우려해) 가정에서 세탁하기를 꺼리는 동료도 있다”며 “세탁기를 다시 들여달라고 건의는 하는데 회사가 들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산화알루미늄(Al2O3), 스피넬(마그네슘 알루미네이트·MgAl2O4), 불화 마그네슘(MgF2)을 취급한다. 공단의 MSDS에 따르면 산화알루미늄은 생식세포 변이원성 구분2로, 유전적인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

옷과 신발이 산화알루미늄에 오염될 경우 폐기하고, 인체에 닿으면 즉시 20분 이상 흐르는 물에 피부와 눈을 씻어내야 한다. 산화알루미늄은 산안법상 관리대상 유해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그의 작업장에도 세탁시설이 있어야 한다.

스피넬은 MSDS에 등록된 ‘급성 독성 물질’이다. 1회 또는 24시간 이내 수회에 걸쳐 투여하거나 4시간 동안 호흡할 경우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 불화 마그네슘은 최대 4시간 피부 접촉 시 염증, 홍반, 가피, 부종을 유발한다. 1회 노출만으로도 호흡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노동자가 무인 세탁소로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정에서 하기에는 찜찜하고 일반 세탁소에 가면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세탁을 의뢰하자 세탁소 운영자는 “오염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꽤 된다”고 답하자 “세탁이 어렵겠다”며 거절했다.

무인 세탁소에는 상주하는 관리자가 없어 누가, 어떤 옷을 세탁하는지 알 수 없다. 무인 세탁소 2곳에 문의했더니 세탁기 통은 1주일에 최대 2회 세척한다. 세척하지 않는 기간 동안 세탁기에 화학물질이 잔류한다면 제 3자의 세탁물에 교차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김윤정·백승연·우태경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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