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쁘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화나면 붉으락푸르락하다. 아프니까 신음하며 즐거우니 흥얼거린다. 인간의 감정표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아프리카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만나서 반갑다는 표시를 했고 정이 들어 헤어질 때는 눈물을 흘렸다. 아셀라에서는 낯설다고 한국 단원에게 돌까지 던졌다. 가까워지자 그곳 사람이 보호에 나섰다.

▲ 당나귀가 짐을 짊어지고 아셀라 인근마을 다리를 건넌다.

아다마 시의 숙소에서 1월 20일 오전 8시에 이테야로 출발했다. A9 도로를 타자마자 낙타 떼가 길가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사막지대도 아닌데 낙타 떼를 만나다니 신기했다. 자동차로 45분을 달려 이테야에 도착했다. 월드프렌즈 단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봉사 팀의 이름은 테야. 유지연 팀장(가톨릭대)과 차미진(원주대·회계) 최미로(서울기독대·교육) 오서현(선문대·서기) 이서연(중원대·홍보) 단원으로 구성됐다. 유 팀장은 “이테야에서 ‘테야’를 가져와 ‘봉사할 테야’라는 뜻으로 팀명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학생 수가 2000명에 이르는 마가리사 초등학교에서 세계시민, 과학, 음악, 미술, 율동, 한국어와 태권도 그리고 K-POP을 가르쳤다. 학교는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이다. 이테야는 1만 3000명의 소도시로 대다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 학교에 다닌다.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도시화 지수는 22%, 문자해독률은 49%이다. 도시화 지수는 전체 국민의 도시 거주 비율을 나타낸다. 문자해독률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비율이다. 이 수치를 보더라도 에티오피아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이다. 참고로 한국의 도시화 지수는 2015년 기준으로 81%에 문자해독률은 100%에 가깝다.

유 팀장은 “국제개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단원이 됐다”며 “대학 재학 중에 해외 봉사 경험을 쌓고 싶다면 이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경찰행정학 전공자인 이서연 단원은 “2년 전에 케냐에 2주간 단기 봉사로 갔다가 아쉬워 다시 중기 단원이 됐다. 아프리카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쳐 즐거웠다”고 말했다.

▲ 마가리사 초등학교의 남학생과 여학생

테야 팀은 에티오피아에 파견된 네 팀 중 가장 무난하게 봉사활동을 했다. 선배 기수가 두 번이나 다녀가 노하우가 쌓인 덕분이다. 물론 애로사항이 있었다. 물과 전기가 부족해 단수 단전이 자주 발생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수업 준비도 어려웠다. 초등학생이지만 7살부터 30살까지였다. 농사일로 늦깎이 학생이 많았다. 그곳에서 테야 단원의 활동을 점검하고 함께 오찬을 했다. 오후 2시경에 아셀라로 향했다.

아셀라는 아디스아바바에서 A1과 A9 도로를 타고 남동쪽 도로로 165km 떨어진 도시다. 한라산 보다 높은 해발 2430m의 고산지대이다. 1년 내내 평균 낮 온도가 21도이다. 이곳의 인구 성장세가 가파르다. 1995년에는 5만, 2007년에 7만, 2012년에는 11만 명으로 늘었다.

이곳의 봉사 팀 이름은 ‘아이셀라유(I Sella U),’ I Seoul U를 본떴다. 다섯 명의 여대생이 아셀라 교사양성학교에서 초기 적응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대사협이 지난해 8월 아셀라에 봉사 단원을 처음으로 파견했다. 마을 사람들은 동양계 여성을 처음 봐서인지 돌까지 던졌다. 이들 단원은 운동장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정착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학교는 처음에 이들의 봉사활동에 시큰둥했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았고 여성 단원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전 조사를 통해 운동장을 만드는 현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들의 태도가 바뀌어 갔다. 이 학교가 방치한 황무지가 그럴듯한 축구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 아셀라 봉사단원과 학교 관계자가 운동장 앞에서 즐거워한다.

안성주 팀장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이다. 해외현장 인턴으로 15학점을 인정받았다. 휴학하지 않은 상태에서 3학년 2학기를 마쳤다. 지금은 4학년으로 졸업 후에 “국제개발협력에서 커리어를 쌓겠다”고 한다.

안 팀장은 곽예은(숙명대·홍보) 김승희(인하대·회계) 유지현(연세대·서기) 이현정(아주대·교육) 단원과 함께 “서로 배려하고 협조하면서 현지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고 말했다.

이들과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갔다. 어두컴컴한 밤거리가 다소 위협적이다. 희미한 가로등 길에서 동네 길로 들어서니 옆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깔렸다. 밤거리가 으스스했다.

에티오피아에 파견된 18명의 단원 중 16명이 여성이다. 군에 입대하면 남성은 내무반에서 단체 생활을 한다. 여대생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월드프렌즈 중기단원 모집에 여대생 지원율이 높은 이유이다. 단원으로 선발되면 5개월간 군 내무반에서와 비슷한 단체생활을 해외에서 한다. 견문을 넓히고 동료애를 쌓고 인간적으로 성숙할 절호의 기회다.

▲ 독일식 농촌개발원 내부와 자카란다 꽃나무(오른쪽)

21일에도 아침 6시에 기상했다. 아셀라가 최종 목적지라 다소 여유가 생겼다. 아침 일찍 자카란다 꽃구경에 나섰다. 독일이 지원하는 농촌개발원 근처였다.

정문 수위에게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농촌 지도자가 될 청년을 모아 교육하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독일이 나무심기를 포함해 통 크게 에티오피아의 농촌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개발원을 나와서 구글 지도를 보니 호수가 보였다. 큰길 아래의 마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아셀라의 소박한 마을 풍경을 보았다. 마치 1960년대 한국의 시골 모습이다.

마을주민이 당나귀에 짐을 싣고 부지런히 걸어간다. 아낙네들이 머리에 짐을 졌으며 청소년은 소나 말을 앞세우고 걸었다. 에티오피아인의 80%는 이런 시골에서 지낸다. 그들에게 물과 전기와 의료시설이 필요해 보였다.

▲ 마을 사람이 짐진 당나귀와 걷고 있다.

숙소에서 나와서 오전 11시쯤 아셀라 교사양성학교의 학장실을 방문했다.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웠다. 재학생 100여 명이 학장실 건물을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며 손뼉을 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에티오피아의 최다 종족인 오로모족은 틈틈이 반정부 시위를 한다. 두 번째로 많은 암하라족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날은 오로모족 출신 학생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와 학교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시위가 30분쯤 계속되다가 풀렸다. 학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운동장으로 갔다. 이곳 봉사 단원이 시공업체를 직접 정하고 전체 공사과정을 지휘 감독했다.

긴 풀을 헤치며 가니 한쪽 구석에 아름다운 축구장이 펼쳐졌다. 한국 여대생들이 고국에서 1만㎞ 떨어진 아프리카 외지에서 국제규격에 맞는 축구장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 에티오피아 월드프렌즈 6기 단원

여행을 하면 할수록 분명해진다. 인류는 오대양 육대주에 흩어져 살지만 지구촌 구성원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 우리는 세계 여행을 지속해야 한다. 그만큼 에티오피아 여행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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