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4월 8일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중도 하차했다. 대권 도전은 멈췄지만 그를 향한 유권자의 지지는 미국 정치권에 숙제를 남겼다.

샌더스가 4년 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힐러리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올해 바이든과의 대결에서 ‘슈퍼화요일’ 이전까지 선전한 원인은 간명하다. 다른 주자와 구별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한국판에서 추천사를 쓴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는 3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워싱턴 주류 정치와 다른 흐름을 강하게 원한다. 그런 흐름에 호응하는 정치인이 샌더스”라고 평가했다.

▲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출처=페이스북)

샌더스는 2019년 6월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부국에 사는 우리는 경제권이 인권임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의 의미”라고 말했다.

경제권이 곧 인권이라는 주장은 2017년 기준으로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평균소득/소득 하위 20% 평균소득)이 8.4에 육박하는 미국의 불평등한 현실에서 유권자의 높은 호응을 얻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19년 5월 미국인을 대상으로 사회주의에 관한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긍정적이라는 응답자는 1942년 25%에서 2019년 43%로 증가했다. 돈이 없어서 겪는 불행이 산적해가는 현실을 공유하는 유권자에게 샌더스라는 정치인이 하나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샌더스가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가치관을 형성한 배경에는 빈곤한 어린 시절이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지난 2월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샌더스는 어린 시절 침실이 하나뿐인 월셋집에서 자랐다. 방이 비좁아 가족 중 누군가는 거실로 나가 잠을 청했다.

그가 18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2년 뒤에는 평생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가정을 부양하던 아버지마저 잃었다. 샌더스는 2016년 2월 CBS 저녁뉴스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끊임없이 압박감에 시달렸던 이유는 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샌더스가 2020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발표한 ‘모두를 위한’ 공약집은 불평등 완화 방안을 담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두를 위한 대학’ 정책과 관련해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만들고 모든 학자금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영리단체 TICA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미국 4년제 졸업생 3분의 2가 학자금을 대출받았는데 인당 2만9200달러에 이른다.

인디애나주의 퍼듀대 강사인 나톤스키 씨(27)는 3월 17일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에 누군가가 학자금 대출 채무를 가지고 졸업했는데 개인의 선택권과 기회를 앗아가는 것을 지켜봤다”며 “젊은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면 경제도 부흥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애틀란타에 사는 대학생 니사바 씨(22)는 3월 16일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부가 부채 탕감을 받을 출구를 확대한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면서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학자금 대출 채무를 감당하는 과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샌더스는 공공의료보험이 부재한 미국의 현실 탓에 가난한 이들이 건강조차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소득, 연령, 장애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보험 수혜자로 만들겠다는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 공약을 내놓은 이유다.

▲ 미국인의 사회주의 호감도 조사(출처=갤럽)

샌더스는 급진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돌파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1월 19일 “샌더스는 타협을 가장 싫어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며 “그의 급진적인 정책은 오히려 트럼프 재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선 후보로 샌더스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다.

급진적이라는 평가는 공약 실현에 필요한 예산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지 못해서다. 조성주 소장은 3월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예산 충당 문제를 부자 증세를 통해서만 해결하려고 한다”라며 “예산에 대한 대비가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샌더스는 “우리의 경선 참여는 여기에서 마치지만 우리가 시작한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경선을 그만뒀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운동은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진보 정치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나톤스키 씨(27)는 3월 18일 서면 인터뷰에서 “샌더스가 미국 정치판에서 급진적 인물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유럽 정치인에 비하면 급진적인 인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서 “우리 정치에 급진적인 인물을 두는 것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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