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관광진흥개발기금법 제1조는 ‘관광 사업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고 관광을 통한 외화 수입의 증대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조성하도록 규정했다.

같은 법의 제2조 ②항 3호에 따라 출국세가 기금재원에 포함됐다. 항공사의 징수 대행 수수료를 제외한 출국세 전액이 관광 사업에 사용된다.

의류회사에 근무하는 강모 씨(58·서울 서초구)는 이런 출국세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출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나가야 하는데 아무 상관도 없는 국내 관광사업에 쓰이는 돈을 왜 내야 하나.”

강 씨는 공장이 있는 베트남과 중국에 자주 출장을 간다. 출국세 제도가 도입된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해외 출장 횟수가 400회를 넘는다. 출국 때마다 1만 원씩, 400만 원 가량을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냈다.

몇몇 전문가는 관광진흥을 위한 출국세가 부담금 부과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환경개선부담금은 환경개선 등 공공사업을 필요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 즉 환경오염행위자에게 부과한다. 재개발부담금은 사업의 편익을 얻는 수혜자, 즉 아파트 소유주에게 부과한다. 출국자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권순현 신라대 교수(법학과)는 “출국 목적에 관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 유학 등 여러 목적으로 출국하는데 이들이 국내 관광진흥사업을 필요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방승주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출국자를 관광사업의 편익을 얻는 수혜자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 취재팀이 만난 권순현 오영민 방승주 교수(왼쪽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공개하는 ‘관광진흥개발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출국세로 조성한 관광진흥개발기금은 호텔, 리조트 등 관광사업자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융자 사업과 관광홍보 등의 보조 사업에 사용한다.
 
기획재정부의 부담금운용평가단 역시 출국세가 부담금 부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냈다. 평가단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조직이다.

평가단은 2017년 부담금운용평가보고서에서 ‘출국세의 납부자인 출국자가 국내 관광 발전을 저해하는 직접 원인자도 아니고, 국내 관광진흥으로부터 이익을 받는 한정된 수익자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식 보고서조차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출국세를 24년째 출국자에게 부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팀은 보고서 작성 당시부터 현재까지 부담금운용평가단장을 맡은 조세재정연구원 김현아 재정지출분석센터장에게 2월 21일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 센터장은 정부의 공식의견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 인터뷰를 거절했다.

법학자들은 출국세 근거인 관광진흥개발기금법 제2조 ③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지난 2003년,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났지만 헌법소원이 다시 제기된다면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당시 헌법소원은 중국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해 수시로 중국을 왕래하던 양 모 씨가 청구했다. 관광목적 출국이 아님에도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재원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출국세가 부당하다고 했다.

합헌 의견을 냈던 재판관 5명은 출국자를 “일반인과 구별되는 사회적으로 동질성을 가지는 특정집단”이라고 봤다. 한 해 출국자가 약 700만 명(2003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약 15%였는데 이들이 해외여행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방승주 한양대 교수는 판결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내국인 출국자가 20% 미만이라는 점을 합헌의 근거로 들었으나 현재는 출국자가 전체 인구의 과반이다. 출국자를 일반인과 구별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볼 수 없다.”

위헌의견을 냈던 재판관 4명은 당시에도 출국자를 특정 집단으로 묶기 힘들다고 봤다. “오늘날 국외여행은 국민들 사이에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어 이를 특정 계층만의 사치로 치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합헌을 주장한 재판관 5명은 “(출국자가) 잠재적인 국내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광산업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관광수지적자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함으로써 국내 관광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외여행이 보편화한 상황에서 출국자가 국내관광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다.

대법원 판례심사위원회의 길용원 조사위원은 서면 인터뷰에서 “국외여행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고려할 때 출국자에게 원인자 부담금으로서 출국세 부과는 적절치 못하다”고 했다.

위헌의견에도 “관광수지 적자의 책임을 출국자에게 전가하고 국외여행 자체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라며 “국외여행의 목적은 사업, 연수 등으로 다양한데 출국자가 관광수지 적자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비슷한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와서 중단된 부담금이 있다. 공연장과 영화관, 문화재 입장객에게 부과하던 문예진흥기금이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공연장 등의 이용이 더 이상 특정 계층의 국민에게 한정되지 않고, 공연 관람하는 일부 국민만이 문화예술의 진흥에 특별한 부담을 질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판시했다.

부담금운용평가단은 출국세에 대해 2017년에 존치 결정을 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출국세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의 재원 조달을 위한 행정편의 외에 부담금의 운영 원리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가단은 “향후 출국세를 부담금의 운영 원리에 부합한 제도개선 방안을 공론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존치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공론화는 진전이 없었다.

출국세 폐지론을 주장한 권순현 신라대 교수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이 꼭 필요하다면 조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세는 모든 국민이 균등하게 부담한다는 점에서 부담금과 차이가 있다.

길용원 대법원 조사위원 역시 “출국세가 부담금으로서의 기본적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점에서 폐지가 고려된다”며 “대안으로는 국내 관광시설 이용료 등으로 징수하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