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역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를 선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이라고도 불린다.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연기한다.

작년 8월 개봉한 연극 <오펀스>, 올해 4월에 개봉한 뮤지컬 <적벽>이 이런 식으로 배역을 정했다. 영국의 연극 <햄릿> 제작진이 여성 배역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2017년 도입했다. <햄릿>이 성황리에 끝나자 미국의 연극 <헤드윅>도 시도했다.

<적벽>은 중국의 위·촉·오 시대를 배경으로, 원래 서사는 남성 배역 중심이다. 재개봉을 하면서 남성 배역인 제갈량, 조자룡, 주류를 여성 배우가 연기했다. <오펀스>도 재개봉 과정에서 주인공 트릿, 해럴드, 필립 배역을 여성으로 캐스팅했다.

▲ 오펀스(왼쪽)와 적벽의 포스터 (출처=레드앤블루, 정동극장)

젠더 프리 공연은 국내에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연극감독 정호붕 씨(56)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받는 젠더 프리극은 관객이 다양한 컨텐츠를 만날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여성 배우가 해석하는 남성과 남성 배우가 해석하는 여성은 다를 수 있다. 연극은 배우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므로 젠더 프리 공연에서는 배역의 성별이 바뀌면서 자유롭게 연기한다고 정 감독은 설명했다.

지난 10월 <오펀스>를 관람한 대학생 강정은 씨(20)는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소화하는 모습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조력자 수준이던 여성이 갱 단원이나 도둑처럼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이화여대 총연극회는 젠더 프리 연극인 <맨끝줄 소년>을 작년 8월 공연했다. 총연극회는 여성 서사 위주의 연극을 주로 시도하다가 남성 서사극에 도전한 셈이다.

배우로 참여한 경영학과 박수현 씨(21)는 대학로에서 젠더 블라인드 연극이 늘면서 아마추어 여성 배우가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아졌다고 느낀다. “남성 배역을 여성 캐릭터로 올릴 때 달라지는 배역의 해석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된다.”

▲이화여대 총연극회가 공연한 <맨 끝줄 소년>은 모든 배우가 여성인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했다. (사진=이화여대 총연극회)

대학 수업에서도 젠더 프리 연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중앙대 연극학과 한도영 씨(20)는 남성 배역이라고 인식되는 배역을 여성이 맡고, 여성의 배역을 남성이 맡으면 새로운 매력과 생동감을 준다고 느낀다.

중앙대 연극학과 박연수 씨(21)도 학교 수업을 통해 젠더 프리 연극을 자연스럽게 접했는데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식 중 하나로 받아 들인다.

이화여대 이소희 겸임교수(45·인문예술미디어융합학부)는 연극이 행동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예술이자 의견을 형성하고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사회적인 예술이라고 했다 “젠더 프리 연극을 통해 현대 사회에 필요한 성평등 의식과 젠더 감수성에 대해 피력할 수 있다.”

이수진 칼럼니스트(49)는 상대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젠더 프리 연극은 기존의 연극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젠더 프리 연극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오랫동안 이어진 남성 중심적 문화에서 탈피할 때 완성된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