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구 중남구의 진호만 부위원장(67)에게 뺨을 맞은 강 모 검사가 말했다. “야, 너 기질이 맘에 든다.”

영문을 모르고 유치장에 수감되자 진 부위원장이 화를 못 이기고 손찌검을 했다. 검사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진 부위원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몇 살 많던 강 검사와 친해졌다.

가족과 친구를 등지면서 민주당 계열의 정당 활동을 계속했다. 자신의 기질 덕이라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겪은 일과 5‧18 상황을 알고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젊은 혈기가, 피가 붉었던 거지.”

정치에 발을 들인 지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민주화가 됐다. 정권은 평화적으로 교체된다. 진 부위원장의 마지막 소원은 대구의 변화다. “광주와 대구를 무비판적으로 비교하는, 건강하지 못한 문화를 청산하고 싶다.”

그는 직장암에 걸렸다. 4년 전이다. 그러나 정치를 하면서 배운 술과 등산은 끊지 못했다.

▲ 취재팀을 만난 진호만 부위원장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65)은 치과의사다. 선거가 없으면 진료를 한다. 선거운동을 하면 그를 알아보고 “이빨 좀 봐 주이소”하는 유권자가 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사회운동 차원에서 극단 ‘처용’을 운영했고 ‘페놀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등 환경운동을 했다. 1995년부터는 정치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구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고 생각했다. 시민운동은 정책의 입안과 결정, 곧 정치와 연결됐다. 대구 정치는 지역감정과 ‘반공이 국시’라는 이념에 휘둘렸다.

제21대 총선으로 민주당은 177석의 거대 여당이 됐다. 대구 민주당은 0석이다. 이 전 장관은 “대구 민주당에는 대여섯 번 이상 출마한 사람이 많다. 시민이 언젠가 돌이켜 보면서 저 사람을 뽑았으면 더 잘했을 텐데라는 각성이 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을 도운 팽용일 선거상황실장(54)은 1995년부터 새정치국민회의(지금의 민주당) 상근당직자였다. 팽 실장 역시 대구 민주당의 1석은 국회 전체 의석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팽 실장은 이 전 장관이 시당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항상 소통하고 무던한 자세를 보면서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대구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 전 장관과 2008년 선거부터 함께 하는 이주호 수행팀장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형님(팽용일 실장) 말씀대로 형, 아우, 동지 이런 부분이 와 닿았다. 후보가 좋아서, 정치하는 사람 같지 않아서 수행했다.”

이 팀장은 20대 중반, 캠프에 발을 들였다. 지금은 30대 후반이다. 당이 대승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당이 180석 가져온 게, 저한테는 의미 없심더. 후보가 낙선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선거 기간에 이 팀장은 오전 5시에 일어나 늦으면 다음날 새벽 1~2시에 들어갔다. 수행을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완주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이 전 장관의 마지막 도전을 아름답게 장식하겠다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다. “후보와 둘이서 긴… 여행을 간다는 느낌이었다.”

▲ 왼쪽부터 이주호 수행팀장, 이재용 전 장관, 팽용일 선거상황실장

대구 민주당 소속의 광역‧기초의원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55명 당선됐다. 이 전 장관은 “내 책임도 다음 선거 한 번쯤으로 끝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5월부터 유튜브 ‘재용TV 시즌2’를 시작했다. 5월 23일 방송 중에는 ‘대구시장 또 한 번 도전해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전 장관은 “이제 고만 도전하려고 합니다”라며 웃었다. 대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젊은 정치인의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 전 장관과 참모들이 유튜브 방송을 마치고 식사하러 갔다. 5월 30일 오후 9시였다. 그들은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다음 횡단보도에서도, 그 다음 횡단보도에서도 일행은 신호를 기다렸다.

이 전 장관은 천천히 걸었다. 기자는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회색 재킷과 베이지색 바지, 바람막이, 검은 운동화 차림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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