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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호를 아시나요?

기사승인 2020.08.03  11: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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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를 못 부쳐준 게 마음에 제일 걸려. 먹고 싶다고 그랬는데.” 7월 4일 인천 연수구 카페에서 만난 이삼임 씨(66)는 김종평 씨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먹을거리를 부쳐달라는 연락을 끝으로 김 씨가 탔던 98금양호는 침몰했다.

금양호는 2010년 4월 2일 천안함 수색에 투입됐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캄보디아 국적 화물선과 충돌했다. 선원 9명 중 2명은 숨진 채로 발견됐다. 나머지 7명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이 씨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40년 동안 김밥, 소라, 음료수, 김밥, 라면을 팔았다. 선착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김 씨의 착한 성정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남을 많이 도와주는 성격이라고 했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길 꺼리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의 인생을 생각하면 이 씨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김 씨는 새어머니 아래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는데 살다 보면 어려운 점이 많아. 뭔가 혼자 못할 때 그럴 때 그리워지더라고.” 두 사람은 동거 중이었다.

▲ 인천 연수구에서 만난 이삼임 씨

침몰 직후에 정부의 의사상자 심의위원회는 금양호 선원을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의사상자법상)’이 정한 요건, 급박한 위해와 적극적, 직접적인 구조 활동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법을 개정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요청으로 구조행위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이동하던 중에 사망하거나 부상하면 의사상자로 인정할 수 있게 하면서 한국인 선원 7명, 인도네시아인 선원 2명이 2012년에 의사자가 됐다.

하지만 유가족 대책 자문위원장이었던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금양호98사건은 끔찍한 사건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민에 대한 예우가 없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의사자가 되면 보상·의료급여·교육 보호·취업 보호·장제보호의 혜택을 준다. 유족은 각각 보상금 1억 9694만 원을 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국민 성금이 문제였다. 법 개정 당시 신설된 부칙 제2조 제3항은 ‘유족이 의사상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으면 국가가 그 금액에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금양호 유족은 2010년 9월 ‘사랑의 열매’를 통해 희생자 1인당 2억 5000만 원을 받았다. 천안함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국민이 보낸 성금이었다.

▲ 천안함 재단 홈페이지

김 사무총장은 “유가족과 국회를 다니면서 국회의원을 설득해서 의사자법을 개정했다. 그 후에 보상금을 지급해달라고 하니까 국민 성금을 받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족에게 적용된 부칙은 예외적이었다. 법이 개정된 2011년부터 1년만 유효했기에 현재는 효력이 없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의사자 문제가 불거지자 보건복지부는 해당 부칙은 세월호 사고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개정안 심사과정에서 의원들은 개정안이 금양호 유족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법제사법위원회는 “개정 입법안이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한 금양호 사망 선원들을 위해 만든 취지임을 충분히 감안하여, 향후 대통령령 제정과 의사상자심사위원회 심사에 반영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명시했다.

제301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제3차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양승조 당시 의원은 “종종 커다란 사건 같은 경우는 실제적으로 국가로부터 배상받는 것 외에 우리가 나름대로 사회로부터 성금을 모아서 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리고 받고 나서 이따가 나중에 국가로부터 정식적으로 배상청구를 해서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것하고는 좀 저기가 차이가 나지 않아요?”라고 발언했다.

반대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중배상을 금지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대답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돼 금양호 유족에게 적용됐다. 행정소송에서 유족이 패소했다.

▲ 인천 연안부두의 금양호 추모비

금양호 추모비는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앞에 있다. 기자가 찾아갔더니 때가 묻은 목장갑 4개가 보였다. 바다 쉼터 입구에서 추모비까지 약 30m를 걷는 동안에 표지판은 없었다.
 
김 사무총장은 위령탑을 옮겨야 한다고 인천시에 건의했다. 2년 전에는 송유관 기름유출 사고로 출입구가 막히기도 했다. “(금양호 위령탑이) 인천의 유일한 의사자 위령탑인데 거기가 있을 공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천 시민도 몰라요. 그게 무슨 상인지.”

관리는 누가 할까. 인천시설공단, 인천시, 중구청에 물었지만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천항만공사가 위령탑 부지를 제공했지만 관리 주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공사의 신은택 물류사업팀 과장은 “저희(인천항만공사) 부지에 위령탑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드린 것”이라며 “폐기물 처리나 주변 녹지 정리는 수시로 하지만 다른 것을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종평, 김재후, 박연주, 안상철, 이용상, 정봉조, 허석희, 유수프 하에파, 캄방 누르카효. 금양호98 선원 9명의 이름이다.

 

 

 

 

김윤정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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