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방문한다면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프라도 박물관’ 관람을 무엇보다 먼저 권유하고 싶다. 소피아 미술관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가 있다. 프라도 박물관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130년의 시차를 두고 스페인을 침입한 주변 열강의 잔혹함과 스페인 내란의 참혹함을 잘 표현한다. 스페인은 반도국가로서 외세의 침입과 동족상쟁의 전쟁을 겪었다. 이들 작품이 특별한 이유이다.
     

▲ 작품 <1808년 5월 3일>

유럽여행을 하면 자주 걷게 된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여행을 열흘 하면 보통 3㎏ 빠진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대륙은 걸어서 여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몸무게가 는다.

남유럽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스페인에서 시내 관광을 주로 걸어서 했다. 마드리드 다운타운 중심지인 솔 광장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발데아세데라스 메트로역 근처의 이라제 운 호텔(Erase un Hotel)에 여행 짐을 풀었다.

깨끗하고 아담한 비즈니스호텔이다. 그곳에서는 마드리드 어디든지 지하철이나 버스로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다. 지도를 보고 걷다가 멀다 싶으면 지하철을 타곤 했다.

도시의 미관에 대해선 처음에 그렇게 큰 감흥이 일지 않았다.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니언을 처음 갔을 때 “지구상에 이런 멋있는 풍경이 있나”하며 “와” 소리가 나오지만 그때뿐인 것과 비슷했다.

아무리 멋있는 장면이라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미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고색창연한 교회와 성당, 휘황찬란한 왕궁을 많이 봐서인지 마드리드가 관광지로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선인장 형태의 조각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국제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회(IAMCR)의 한 분과가 아토차역 근처의 선술집에서 마련한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그로테스크한 마드리드의 뒷골목을 걷던 중이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누구의 작품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조형물 주위를 살펴봤으나 아무 설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 선인장 조형물

서울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소피아 미술관 입구의 엘리베이터 옆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알베르토 센체즈 페레즈의 작품이다. 피카소는 이 조형물에 대해 “지상 최고가 되려는 스페인 사람의 스피릿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조형물 자체가 ‘스타가 되는 길(a Path That Leads to a Star)’을 상징한다. 스페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토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선인장을 따라 하늘에 오를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누구나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될 수 있다”고 피카소는 그의 메모에 적어놓았다.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는 다르게, 미술관 안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의 참혹함과 프랑코군을 지원한 독일 나치의 무자비함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주문을 받아 1937년 초에 파리 만국 박람회에 보낼 그림을 준비했다.

그해 4월 26일 스페인 북부의 작은 게르니카 마을이 나치 비행기 24대에 의해 융단 폭격을 당했다. 전체 마을 사람 7000명에서 16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격 후 마을의 집계에 의하면 공습에 의한 사망자가 153명이었다고 하는데, 누가 집계했느냐에 따라 사망자가 이보다 늘어난다. 대다수가 마을에 남아있던 여성과 어린이다.

피카소는 당시 파리에 체류했는데 이러한 참상을 신문에서 읽고 분노했다. 그때부터 2개월 남짓 <게르니카>을 그렸고, 그해 여름에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했다. 이 그림은 곧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박람회 후에 이 대작은 미국으로 옮겨졌다가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1981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와, 1992년부터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됐다. 소피아 미술관은 원래 병원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파리 오르쎄 미술관이 철도역을 개조해 만든 것에 비견된다.

 

 

소피아 미술관 안과 밖에 <게르니카>와 선인장 조형물이 있다.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연상하게 한다.

스페인관 좌우에는 거대한 독일관과 프랑스관이 있었다고 한다. 에펠탑을 사이에 두고는 독일관과 소련관이 서로 경쟁하듯이 마주 봤다. 하지만 이 두 작품으로 스페인관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다섯 회화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20세기 스페인이 낳은 거장이 피카소라면 19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는 프란시스코 고야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고야의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자식을 잡아먹은 사투르누스> 외에도 3만 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중에서 고야의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이란 대형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다. 데자뷔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화폭에 재현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그림들은 나폴레옹 군대의 마드리드 점령과 스페인 민중의 봉기에 이어 프랑스 군대의 양민 학살을 화폭에 담았다. 작품의 구도는 한 세기 후에 피카소에 이어졌다. 피카소는 1951년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회화로 남겼다. 이 그림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작품 구도와 비슷하다.

▲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여행이란 인류의 삶과 문화에 대한 성찰이다. 여행은 그 자체로 깨달음이고 자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타국에서 우리와 비슷한 삶을 발견하거나 전혀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이 괴롭고 피곤하고, 인생이 지루하다면 여행을 떠나자. 나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스페인에서 교사나 교수 혹은 기자는 프라도 박물관이나 다른 미술관 입장이 무료다. 단 영어로 작성된 신분증이나 재직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