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근교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평소 흠모해 왔던 성인 바나바스를 만난 일이다. 바나바스를 역할 모델로 삼고자 2014년 10월 제41대 한국언론학회 회장 취임사에서 그를 인용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나바스의 인물화를 보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스페인 여행의 최대 수확으로 꼽을 만하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나흘째 되는 7월 9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숙소 룸메이트였던 김문환 전 세명대 교수의 제안에 따라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43㎞ 떨어진 산로렌조데엘에스코리알과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42㎞ 떨어진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매일경제와 SBS에서 젊은 시절 20년 동안 사회부 기자를 역임했다. 지금은 그리스와 로마 유적의 전문가로 ‘박물관 저널리즘’이란 영역을 개척 중이다.

김 교수 외에도 이틀 전에 국제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회(IAMCR)에서 만난 이혜련 하와이대 교수와 김광미 타우슨대 교수가 하루 탐방 여정에 합류했다. 네 명이 한 팀이 됐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렌터카를 했다.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왔기에 가능했다. 아토차역 근처에서 자동차를 빌렸다. 풍차로 돌진하던 돈키호테의 고향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짜인 틀이 아닌 자유여행이 시작됐다.

마드리드를 벗어나니 한적하고 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마치 영화에서 본 중세의 전원 풍경이다. 첫 도착지는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이다. 과다라마 산맥에 있는 푸른 고원지대이다.

성인 로렌조를 기념하는 수도원이 요새와 같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남북으로 207m, 동서로 161m의 직사각형의 부지 위에 세워졌다. 비잔틴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궁전 모습이다. 성당 건물을 중심으로 왼쪽이 왕궁이고 오른쪽이 수도원이다.

▲ 산로렌조 수도원
▲ 솔로몬 동상

수도원 건축은 스페인이 1557년 앙리 2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펠리페 2세의 지시에 따라 시작됐다. 입구에서 건물을 바라보니 꼭대기에 다윗과 솔로몬 조각상이 놓여있다. 이스라엘 왕국도 아닌데 왜 다윗과 솔로몬의 동상이 이곳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행 후 구글을 찾아보니, 수도원이 바로 솔로몬 신전을 모방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있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최전성기의 통치자이다. 평소에 자신과 아버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와의 관계를 다윗과 솔로몬에 비유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카를 5세는 스페인에서 카를로스 1세라고도 불린다.

이 기념비적 건축물이 펠리페 2세의 ‘유대인 왕에 대한 집착’으로 세워졌다는 가설인데, 설명력이 있다. 수도원을 완공하는데 21년이나 걸렸다. 이곳은 왕실무덤인 판테온, 성당, 수녀원, 도서관 그리고 왕실의 하계 궁전으로 이용됐다.

▲ 바나바스(우) 인물화

성당과 도서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성인 바나바스의 인물화이다. 그는 한글 성경에선 ‘바나바’라고 불린다. 바나바스는 예수의 70인 제자 중 하나이다.

한때 함께 사역했던 바울처럼 성경에 자주 인용되는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초대교회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다. 그는 ‘소통과 참여 그리고 격려의 아들(Son of Encouragement)’로 불린다. 성경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 소개된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안티옥으로 파견된다. 바나바스의 사역과 전도에 따라 많은 이방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때의 개종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크리스천’이라 불렸다. 바나바스는 무리의 화목을 위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수고했다. 사도행전에는 권면과 위로를 행하는 '권위자(勸慰者)'로 적혀있다. 그런 인물을 갑자기 만나서 기뻤다.

엘 에스코리알에서 점심을 한 후 근처의 ‘전몰자의 계곡(Valle de Los Caidos)’을 찾았다. 산 아래를 파서 만든 동굴이 262m나 길게 펼쳐졌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암굴 성당이다. 성당 위 바위산에는 높이가 140m에 너비가 47m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석재 무게만도 2만 t이다. 인근 30㎞ 안에서 보인다.

▲ 전몰자의 계곡 산에 세워진 십자가

전몰자의 계곡에는 스페인 내전에서 죽은 4만여 명의 군인이 묻혀 있다. 프랑코 총통이 내전이 끝난 후 전몰자를 위해 무덤을 만들었고 본인도 그곳에 묻혔다. 스페인 국민의 좌우 이념 논쟁에 따른 역사 지우기 운동으로 프랑코 시신은 2019년 10월 마드리드의 가족묘로 이장됐다.

이어서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인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를 보러 갔다. 스페인이 로마의 지배를 받을 때인 기원후 1세기경에 상수도로 이용된 이 수도교가 만들어졌다고 추산된다. 처음에는 이 건축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지난주 친구들과 북한산 계곡으로 물놀이를 하러 가면서 지나갔던 중성문과 비교해 보자. 중성문은 북한산성 입구에서 대동문으로 가는 협곡에 쌓은 조선시대의 성문이다. 길 위에 하나의 아치형으로 세워졌다.

세고비아 수도교는 이러한 아치가 167개나 된다. 단독 아치가 75개이며 이중 아치가 44개이다. 다른 단독 아치 4개를 합하면 아치만도 모두 167개가 된다. 수도교의 높이는 29m이며 길이가 813m이다. 중성문의 높이는 4m, 길이를 5m로 잡아보자. 이렇게 규모를 계산하면 세고비아의 수도교는 어림잡아 북한산성 중성문의 1200배 정도다. 

이렇게 거대한 수도교가 2000년 풍상 속에서도 원형을 유지한 채 늠름하게 서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적으로 등록될 만하다.

 

 

수도교 아래 아소게호 광장은 세고비아 관광의 중심지이다. 맛집으로 알려진 메손 데 칸디로라는 레스토랑을 저녁 장소로 잡았다. 미식가인 이혜련 교수와 김광미 교수는 홀로 여행을  즐긴다. 여행 중에도 각 지방의 유명한 요리나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이들의 추천을 받아서 하몽이란 요리를 시켰다. 하몽은 돼지 다리를 소금에 절여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검은 보타이를 맨 정장의 웨이터가 하몽을 얇게 썰어서 가져왔다. 우리는 흑돼지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를 안주 삼아 와인을 천천히 마셨다.

아소게호 광장에 수도교의 그림자가 깔렸다. 야간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서 은은히 빛을 발하는 기둥에 둘러싸인 아치가 로제 와인 잔에 그윽하게 잠겼다. 2000년 전에 현실을 즐겼던 로마인의 ‘카르페 디엠’ 문화를 안주 삼아 피어오르는 정담 속에서 세고비아의 밤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빛났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즐겁고 유익한 책무 중 하나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는 일이다. 컨퍼런스 기간이나 끝난 후에 덤으로 방문한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며 근처 유적지나 문화현장을 찾았다.

1990년 여름 박사과정생일 당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에서 첫 발표를 했다. 그 후 거의 매년 국제학회 발표를 해왔으니 올해로 30년째이다. 이렇게 지구촌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그 경험을 세계여행기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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