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신경을 써서 글을 구성하면 다른 지원자의 글과 차별화된다고 했다. 결론은 대개 비슷하니 과정을 승부처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독도, 위안부, 경제보복 등 한일 문제를 주제로 논술을 쓰면서 한국을 비판하고 일본을 지지하는 지망생은 거의 없다. 결론은 비슷하다.

문제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다. 사례의 참신성과 논리의 엄밀성을 말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읽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눈에 띄었다.

일본편 1권에는 <일본 답사기를 시작하면서>라는 글이, 4권에는 <일본 답사기를 마치며>라는 글이 실렸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청동기시대는 한반도 도래인들이 일본땅을 점령하다시피 해서 이룬 문화였으며, 문자의 전래는 왕인(王人) 박사의 은혜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반면에 나라시대 동대사(東大寺) 대불(大佛)의 조성은 그네들의 노력의 결과였으며, 다도(茶道)와 무사도(武士道)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문화였다.” (1권, 11~12쪽)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미국문화이지 영국문화가 아니듯, 한반도의 도래인이 건너가 이룩한 문화는 한국문화가 아니라 일본문화이다. 우리는 일본 고대문화를 이런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백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1권, 12쪽)

“아무리 한반도의 영향이 컸다 하더라도 일본이 영향만 받고 자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일본문화로 만든 것은 엄연한 그들의 문화임을 우리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이 절대로 중국이 베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한 한국문화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4권, 11쪽)

유홍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자국(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편협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오랜 역사 속에서 갈등이 불가피하게 존재했는데, 행복한 공존을 위한 해법 역시 역사에서 찾는다.

임진왜란 뒤에 조선과 에도 막부는 관계를 어떻게 정상화했는가. 과거사 문제를 청산해서 가능했다고 유홍준 교수는 설명한다.

“크게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릉(성종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을 파괴한 범릉적(犯陵賊)을 체포하여 처벌하는 문제였고, 또 하나는 일본에 끌려간 피로인(被擄人)의 송환 문제였다.”

에도 막부는 범릉적 2명을 보냈는데 조선은 가짜인줄 알면서도 일본이 성의를 보였다고 보고 이들을 처형하고 문제를 끝냈다, 사명대사 등 쇄환사(刷還使)는 일본에 가서 조선인 5000여 명을 고국으로 데려왔다, 조선의 노력과 에도 막부의 성의로 통신사(通信使) 파견 등 친선 외교가 가능했다고 한다.

유홍준 교수는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가 한일 양국에 필요하다, 과거사의 잘못에 대해 솔직한 인정과 피해 청산이 필요하다, 그다음에 신뢰를 바탕으로 친선관계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에 나오는 사례와 논리는 과정의 차별화에 활용할만하다. 결론에서는 일본의 주장을 비판해도 도입부와 본론에서는 일본의 장점을 설명하는 식이다. 결론에서는 한국의 주장을 강조해도 도입부와 본론에서는 한국의 단점을 인정하는 식이다.

고대 한반도 문화를 받아들일 당시의 포용성, 이를 독자적 문화로 발전시킨 우수성, 임진왜란 이후에 범릉적을 보냈던 성의를 거론하면서 지금의 일본은 어떠한가를 비판하면 어떨까.

결론이 비슷해도 과정이 다르면 심사위원은 흥미롭고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을 줘야 논술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과정과 결론을 중심으로 한일관계를 보는 방식은 다음 칼럼에서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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