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블라오의 플라멩코 조각상

바르셀로나는 문화와 예술, 스포츠, 그리고 혁신의 도시다. 마드리드가 스페인 정치와 행정, 군사의 중심지라면, 바르셀로나는 상공업이 발달한 카탈루냐 자치지방의 주도이다.

카탈루냐는 이베리아 반도 동북쪽 끝에 위치하며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의 국경지대와 맞닿는다. 스페인 영토의 6%를 차지하며 총 인구의 16%가 이곳에 산다.

경제 규모는 이 나라 국민총생산(GNP)의 19%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물자가 풍부하다. 카탈루냐인은 역사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다.

프랑코 총통(1892~1975)은 이러한 분리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동시에 축구를 이용해 그들을 달랬다. 카탈루냐인은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를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 미디어로 삼았다.

문화적 정체성과 자존심, 그리고 이 지역의 풍요함을 축구를 통해 나타냈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게임은 세계 명문 프로팀의 라이벌전 이상이다. 스페인의 주류와 비주류, 중앙과 변방의 대결로 지구촌의 주목을 받았다.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에는 스페인의 다양성과 지역갈등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는 개인적으로 자유와 저항의 도시로 다가왔다. 왜 그러한 이미지가 형성됐을까. 거기에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있다.

5년 전인가. 미디어학부 50주년 기념 강연을 위해 명사를 초청할 일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최영미 시인이 ‘축구를 사랑한다’는 유럽에서의 인터뷰를 유튜브 영상으로 봤다. 여성 시인이 축구 마니아다. 그 후 강의를 들었는데, 바르셀로나에 느꼈던 그런 시인의 자유분방함과 저항 스피릿을 느꼈다.

▲ 요새화한 몬주익 캐슬에 카탈루냐 깃발이 휘날린다.

마드리드 숙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렌페 아베(Renfe Ave)라는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달린 거리만도 506㎞다. 다운타운의 산츠역을 벗어나니 지중해 연안의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마드리드에서 룸메이트였던 김문환 교수는 IAMCR 학회의 종료 하루 전에 로마 유적지를 찾아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떠났다. 그가 하루면 바르셀로나를 다 볼 수 있다며 바르셀로네타 해변 근처의 호텔 델 마르에 방을 예약해 주었다.

델 마르는 미국식 발음으론 ‘델마’라 하는데 샌디에이고 근교의 부자동네 이름이다. 캘리포니아는 한때 멕시코 땅이어서 스페인어 지명이 많다. 로스앤젤레스와 산호세, 샌프란시스코가 모두 그렇다.

호텔에 짐을 푼 후 곧바로 몬주익 캐슬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요새화된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는 여수와 목포를 합쳐 놓은 모양새다. 목포의 유달산 케이블카가 이곳을 벤치마킹한 듯이 비슷하다. 여수의 소노캄(구 엠블, MVL) 호텔처럼 이곳에도 똑같은 모양의 더블유(W) 호텔이 해안에 자리를 잡았다.

▲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바르셀로나 해안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거리는 바로 라스 람블라스(Las Ramblas)이다. 그곳에서 지중해를 바라볼 때 왼쪽에는 고딕 지구, 오른쪽이 라빌 지구이다. 고딕 지구에는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미로처럼 뻗은 골목길,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한 아비뇽거리가 있다. 라발 지구에는 보케리아 시장, 구엘 저택,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 있다.

시내 구경을 한 후 숙소로 가서 잠시 눈을 붙였다. 호텔에서 저녁에 나올 때 프런트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예약했다.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따블라오 플라멩코 코르도베스(Tablao Flamenco Cordobes)의 공연이다. 따블라오는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식당이란 뜻이다.

호텔 델 마르에서 남쪽으로 해안가 도로를 따라 1.5㎞를 걸어가니 높이 60m의 콜럼버스 기념탑이 나타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은 기념탑 꼭대기에 있는데 지중해를 바라본다. 이어 해안가와 직각인 람블라스 거리를 700m 정도 걸어가니 따블라오가 나타났다. 고딕 지구의 중심지인 레이알 광장 바로 옆이다.

공연장 식당에 도착하니 여행객 100여 명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린다. 예약 표를 보여주니 맨 앞으로 안내한다. 식당 이용 관객에게 먼저 앞자리를 내주고, 그 뒤 열로 안내한다. 입장료는 칵테일 한 잔 값을 포함해 18유로이다. 가성비가 높았다.

마드리드에서 IAMCR 학회가 종료되기 하루 전 주최 측은 무용수들을 초청해 야외무대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했다. 댄서들이 열심히 춤을 추었다. 주위가 어수선해서인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이곳에선 플라멩코 공연에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 플라멩코 공연  

플라멩코는 노래와 춤, 그리고 기타 연주가 합쳐진 음악 장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살던 ‘인도계 집시와 무슬림, 유대계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졌다 한다.

따블라오 공연은 집시의 기쁨과 슬픔, 환희와 분노, 좌절과 비통함을 나타낸다. 우리의 민속춤처럼 그곳 민초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남자는 소리와 발의 움직임, 무희는 허리의 움직임을 유심히 봐야한다. 플라멩코 춤에는 손가락에 끼는 캐스터네츠와 박수, 발 구르기 등 다양한 음악적 기교가 사용됐다.

바르셀로나는 스포츠 문화 관광지를 넘어서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세계적인 도시다. 하계 올림픽이 1992년에 개최됐고, 월드컵 경기가 1982년에 이곳에서 열렸다. 세계 산업 박람회는 이미 1888년과 1929년에 열렸다.

바르셀로나시는 2014년부터 팹 시티(Fab City)라는 도시환경 개선 운동을 전개했다. 새로운 개념의 이 도시 운동은 바르셀로나의 40년 프로젝트다. 2054년까지 먹거리를 포함해 에너지와 산업생산품을 50%까지 자급자족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팹 시티 운동은 참여 도시 간에 제4차 산업발전에 따른 AI와 빅 데이터,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한 첨단 기술과 지식, 정보를 공유한다. 자연 친화적인 스마트 시티와 리빙 랩 실험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내겠다 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서는 이산화탄소를 제로로 배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포함한다.

바르셀로나의 팹 시티 운동본부는 2054년이 되면 인류의 75%가 도시에 거주하게 된다고 예측한다. 이 도시 운동에 파리와 몬트리올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28개 도시가 참여한다. 아시아에선 서울과 선전(중국), 팀부(부탄), 가마쿠라(일본)가 참여한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혼자서 걸었다. 도시 불빛 속에서 삼삼오오 청년들이 오렌지색으로 물든 백사장에 둘러앉아 지중해의 밤바다를 즐기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여행과 문화적 교류가 엄격히 제한된다. 삶 자체가 어려운 시기다. 굳이 토인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류 역사는 도전에 따른 응전에 좌우된다.

인류는 팬데믹 이전의 과소비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포함해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는 새 문화를 창조해 낼 것이다. 그때 지중해안의 자유를 느끼고 싶다면 바르셀로나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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