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오렌지 카운티(South Orange County)에 사는 캐슬린(50)은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서 자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보는 걸 좋아한다. 지진이 잦은 캘리포니아주에 살면서 생긴 습관이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지난 4월 3일, 소파에 앉아 범죄 수사 드라마 ‘NCIS:로스앤젤레스’를 보는 도중 흔들림을 느꼈다. 규모 4.9의 지진이었다.

캐슬린은 “지진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알기 위해 트위터에 들어갔더니 LA타임스에서 올린 퀘이크봇 기사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며 “퀘이크봇은 빠르게 정보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작은 진동이라도 심장이 좋지 않은 자신에게는 신체 문제가 아니라 지진때문임을 빨리 알 수 있어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캐트(19)는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리버사이드(Riverside)에 산다. 그는 7월 9일 비디오 게임을 하다가 지진을 느꼈다. 처음에는 진동이 크지 않아 평소와 같은 작은 규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선반 물건이 떨어질 것처럼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곧바로 퀘이크봇을 떠올렸다.

“저는 퀘이크봇으로 거의 모든 지진 정보를 접해요. 지진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기사에 있는 지도를 통해 정확하게 볼 수 있어서 퀘이크봇을 애용하죠.”

캐슬린과 캐트는 LA타임스 트위터에 게재된 퀘이크봇 기사에 댓글을 남겼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이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두 사람은 평소 퀘이크봇을 자주 이용한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퀘이크봇은 지진 발생 기사를 쓰는 LA타임스의 인공지능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짧은 기사를 쓰고 편집자에게 알린다. LA에서 규모 2.5 이상, 캘리포니아주에서 규모 3.0 이상, 하와이에서 규모 4.0 이상,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규모 4.0 이상, 미국에서 규모 4.5 이상, 세계에서 규모 6.0 이상이 기준이다.

▲ 퀘이크봇 기사 하단의 안내문(출처=LA타임스)

기사에는 지진 발생 위치와 규모, 발생 지역에서 캘리포니아 내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나온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퀘이크봇은 미국 지질조사국(USGS)로부터 지진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기사 초안을 자동으로 생성한다. 기사의 기본 문장 구조가 정해져 있어 퀘이크봇이 데이터만 입력하면 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한다고 해서 사람의 개입이 없는 건 아니다. 기사 하단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기사는 USGS가 감지한 최신의 지진을 잡아내는 컴퓨터 어플리케이션 퀘이크봇이 자동으로 생성했다. 타임즈 편집자는 기사가 나오기 전, 이 글을 검토했다.’ 모든 기사는 LA타임스 콘텐츠 관리팀이 검토하고 게재한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기자가 맥락과 설명을 추가한다.

퀘이크봇은 2014년 3월 17일 LA에서 발생한 지진을 가장 빨리 보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지진 발생 8분 만에 올라온 기사였다. 규모 4.4의 지진이었다.

미국의 시사잡지 애틀란틱(The Atlantic)과 인터넷 전문지 슬레이트(Slate Magazine), 영국의 BBC 등 해외 주요 언론은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퀘이크봇을 앞다퉈 다뤘다.

당시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는 “퀘이크봇에 필적할 만한 상대는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생방송 중이었던 앵커들뿐이었다”고 논평했다. 퀘이크봇은 현재까지 900여 개의 지진 기사를 보도했다.

퀘이크봇은 켄 슈웬케 기자가 2014년에 만들었다. 이후 LA타임스를 떠난 그는 뉴욕타임스를 거쳐 현재는 프로퍼블리카에서 뉴스 앱 팀의 에디터로 일한다. 프로퍼블리카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언론이다. 그의 팀은 대화형 데이터베이스와 그래픽(interactive databases and graphics)을 만든다.

지진과 로봇 저널리즘. 쉽게 연결되지 않는 두 가지를 함께 연결한 계기는 무엇일까. 8월 19일 켄 슈웬케 기자와 이메일로 만났다. 첫 메일은 답을 받지 못했다. 일주일 뒤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는 “바빠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며 “한 번 더 메일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슈웬케 기자는 로스앤젤레스의 잦은 지진이 신기했다. 지진이 거의 없는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주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지진 정보를 독자가 볼 수 있는 웹사이트 제작으로 이어졌다.

“웹사이트를 본 에디터는 짧은 기사를 자동으로 쓸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있다는 게 멋지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지진 관련 정보를 LA타임스의 콘텐츠 관리 시스템에 연결시켜 퀘이크봇을 개발했다.”

지진이 잦은 만큼 캘리포니아주 시민에게 지진 발생 기사는 중요하다. 퀘이크봇은 지진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하는데 중점을 뒀다.

자스민(16)은 방송보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퀘이크봇 기사를 신뢰한다. 전 세계 지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어 좋다며 “퀘이크봇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베이커즈필드에 산다.

퀘이크봇도 오보를 낸 적이 있다. 2017년 6월 22일, 산타바바라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태평양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규모 6.8의 큰 지진이었다. 1분 뒤 LA타임스는 웹사이트와 트위터로 속보를 내보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정보를 접한 사람 중 진동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보였기 때문이다. 데이터 출처인 USGS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송한 결과였다. LA타임스는 같은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오보를 냈던 2017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정보 창구를 추가해 신뢰도를 높였다. 현재 LA타임스에서 퀘이크봇을 관리하는 캐시 밀러 기자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후 퀘이크봇이 잘못된 정보로 지진 발생 기사를 쓴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 업데이트된 퀘이크봇의 기사(출처=LA타임스)

작년에는 기능 4개를 추가했다. 먼저 퀘이크봇이 정보를 받는 방식을 바꿨다. 이전에는 USGS의 지진 정보를 이메일로 받았지만 현재는 USGS가 운영하는 ‘JSON’ 피드에서 받는다. 이곳에서는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또한 퀘이크봇에 적용된 기사 구조 알고리즘, 그리고 기사에 들어가는 지도도 새롭게 만들었다. 대규모 지진에 대비해 쉐이크맵(shake map)을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했다. 쉐이크맵은 지진의 강도가 여러 지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밀러 기자에게 퀘이크봇에 대한 독자 반응이 어떤지 물었다. 그는 “매우 만족해한다(readers are largely happy with Quakebot)”고 했다. 자세한 숫자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퀘이크봇이 쓴 기사는 조회 수가 높다고 한다.

LA타임스는 퀘이크봇 기사의 페이지뷰를 확인하며 퀘이크봇이 어떻게 새로운 구독자를 끌어오는 데 기여하는지 점검하는 중이다.

▲ 켄 슈웬케 기자(왼쪽)와 캐시 밀러 기자(출처=프로퍼블리카, 페이스북)

밀러 기자는 다만 “독자의 가장 큰 불평은 지진 발생 장소와 특정 도시까지의 거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퀘이크봇의 거리 계산 방식이 바뀌길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퀘이크봇을 좋아한다. 작은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확인해 짧은 기사를 쓰는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밀러 기자는 “(퀘이크봇 덕분에) 큰 규모의 지진이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신경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퀘이크봇을 만든 슈웬케 기자 역시 “퀘이크봇의 장점은 기자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자가 지진 데이터를 조회하고 반복적으로 단순한 정보를 적는 대신 전화 통화로 현장 피해를 취재하는 등 새로운 정보를 기사에 담게 한다는 뜻이다.

퀘이크봇과 같은 로봇 저널리즘은 기자에게 흥미로운 취재거리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는 “(퀘이크봇과 같은 알고리즘이) 특정 종류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확인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놓칠 수 있는, 뉴스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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