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지만 타살입니다, 단장님.” <비밀의 숲 시즌2>의 주인공 한여진(배두나)이 사건을 보고하며 상사에게 하는 말이다. 드라마에서 경찰이 동료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자살했다. 시신은 가해자 중에서 한 명이 발견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크고 작은 사건은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라는 시즌2의 슬로건과 항상 맞닿는다. 이렇게 이수연 작가(50)는 작은 사건을 모아 전체 흐름을 이끈다.

최종회는 수도권 최고 시청률 12%, 전국 평균 9.4%로 자체 최고 기록을 바꿨다.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을 포함해 동시간대 1위. 시청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 멋지다’ ‘정말 재밌었다. 시즌 3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 <비밀의 숲 시즌2>의 공식 포스터

기자는 이수연 작가에게 11월 6일, 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틀 만에 답장이 왔다. “2020년의 학기를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서면 질문지 보내주시면 답장 보낼게요.”

인터뷰를 준비하려고 시즌1과 2를 처음부터 다시 봤다. 각각 16부작이라 3일이 걸렸다. 시즌2는 시즌1 방영(2017년) 이후 3년 만이었다. 작가가 연구하고 조사하며 대본을 쓰는 데 3년이 걸린 만큼, 치밀하고 잘 짜인,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벌집 같았다.

작가는 사회현상에 특별히 관심이 많거나 특정 조직에 골몰하지 않는다. 다만 검경 갈등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두 집단의 속사정이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소재로 삼은 이유다.

그는 실제 생활에서 갈등을 피해버리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싸우기보다는 평생 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로맨스나 가족극이 아니라 장르물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라서) 끈덕지고 끈끈한 글을 잘 못 쓴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하는 소재는 태생적으로 강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사람 죽는 얘기를 쓰고 있네요.”

이번 소재가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아무리 뉴스에서 많이 들어 익숙하더라도 검경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을 고려한다면 드라마에서 설명이 많아진다. 이러면 드라마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까 봐 걱정한다.

일부에서는 특정 기관의 편을 들거나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려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작가로서 지켜야 하는 중립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현안이건 중립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기에 에피소드 균형 맞추기는 매번 신경 썼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오든 그것 역시 드라마를 먹고, 뜯고, 마시고, 즐기는 과정이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는 황시목(조승우)이 사건 현장을 재현하도록 했다. 범인처럼 칼을 휘두르거나 피해자처럼 줄을 목에 감아 매다는 식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다른 드라마처럼 보일까? 이런 생각에서 만든 장치였다.

협력관계였던 두 주인공, 검사 황시목과 경찰 한여진이 시즌2에서는 대척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검경 갈등이 주제였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시즌2를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준다고 둘의 심리와 상황을 더 친밀하게 만들자니 ‘감정 없음’으로 대표되는 남자 캐릭터 특성이 무뎌질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둘의 마음 자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무도 보고자 하지 않을 것이요, 심리를 안 건드리려면 물리적 거리라도 둬야 하는데 주인공들이 너무 떨어져 있으면 한 사건으로 엮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제외하다 보니 하나만 남은 것이죠. 둘의 관계는 시즌1의 마지막과 비슷하지만 처한 상황이 대척점에 놓인 거요.”

그런 상황은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어야 했다. 혼자만 관련되면 재미없으니 상사든 후배든 다 얽히게 만들어야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가장 큰 장치가 나온 배경이다.

▲ 제54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극본상 수상 장면(출처=스타뉴스)

이 작가는 원래 직장인이었다. 다만 공상과 상상을 좋아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학생 때 작문 숙제도 반겼을까요? 전 글자 수 채우기에 급급했던 걸 보면 그건 아니고 다만 기승전결이 갖춰진 공상,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교육원이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고 ‘이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첫 작품 <비밀의 숲>이 극찬을 받았다. 2017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18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과 극본상을 받았다.

이 작가는 “이런 직업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상상한 내용을 글로 풀어내면 최고의 연출진과 제작진, 연기자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실제로 만들어 준다. 이를 소비하는 사람이 생겨나 결과까지 괜찮다면 떡볶이를 100그릇도 사 먹을 수 있다.

▲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끝나고 스태프와 회식을 했다. (출처=배우 신혜선 인스타그램)

<비밀의 숲> 시리즈는 사건 안의 사건, 자잘한 사건의 퍼즐 맞추기 같다. 그래서 결말과 구조를 처음부터 생각하고 대본을 쓰는지를 물었다.

“결말을 정해놓지 않고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결말은 목표이고 어떻게 그 목표를 구현해낼 것인가가 구성일 테니까요. 사건의 여러 요소를 맞추는 건 대본 쓰기를 전업으로 삼게 되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니까요.”

그는 작가로서 모든 지문, 모든 대사에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밥 먹었어?” 이렇게 한 줄을 쓰더라도 다르게 쓰고 싶다는 각오를 마음에 꾹 넣고 있으면 하나라도 다른 게 나온다고 믿는다. 조심할 점도 있다.

“매번 좋은 대사를 쓰겠다고 힘을 주다 보면 똥폼만 잡은 게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진짜로 쓰고 싶은 대사는 평범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대사입니다. 어려운 말 안 쓰고 미사여구도 없지만 따뜻한 울림이 있는 대사요. 그런 게 진짜 창의력일 거예요.”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누군가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대사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다. 시즌2가 시즌1보다 더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이유도 대사를 대하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르물이 어렵다고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작가가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재배치하여 보여준다. 조용하게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셈이다. 다음 대사는 이 작가가 <비밀의 숲>을 통해 세상에 말하려는 내용을 모두 함축해 놓은 듯하다.

“진리를 좇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비밀의 숲 시즌2> 1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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