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서관 508호에서 특수 상해죄로 기소된 피고인 2명의 재판이 열렸다. 1월 29일이었다.

이들은 교육감에게 신고하지 않고 교습소를 차려 중·고등 및 재수생 6명을 가르쳤다. 체벌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발로 차거나 나무 지휘봉으로 때린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의 머리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또 피고인은 “칼로 배를 쑤시고 싶다”고 위협하고 피해자의 전자기기를 망가뜨렸다. 여러 번 감금해서 다용도실에서 꼼짝 못 하게 만들기도 했다. 허정인 판사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다용도실에 감금할 때, 피해자는 10시간, 14시간 동안 내내 나오지 못했나요? 그 좁은 곳에서요?”라고 물었다. 피고인이 맞다고 하자 판사는 “그 정도로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지배한 거 맞습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피고인은 고개를 숙였다.

2월 1일, 서관 5층은 조용했다. 법정 안내판은 모두 꺼졌고 복도에는 취재팀의 발소리만 들렸다. 그런데 어느 법정에서인가 큰 목소리가 들렸다. 다가갈수록 소리가 커져서 519호에 들어갔다.

증인이 입을 열었다. “손님한테 아로마 팬티 줘요.” 검사는 답답한 듯 피해자가 아로마 팬티를 입었냐고 묻자 증인은 “가게에서는 아로마 팬티 입어요”라고 말했다. 검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창형 판사가 나섰다. 아주 천천히 말했다. “‘내 거 입을게요’하는 사람들 있죠? ‘내 거’를 입은 거예요, 페이퍼 팬티를 입은 거예요?” 그제야 증인이 “받아 입었어요”라고 했다.

마사지숍에서 준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거기서 일하는 증인의 진술이 중요했지만 외국인이라 한국말이 서툴렀다. 검사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하자 판사가 나서 조심스럽게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 서울중앙지법 서관의 법정 복도

현장에 없었는데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까. 프로파일러는 현장 단서를 조합해 피의자의 심리와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다. 판사는 법정에서 프로파일러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 검사 피고인 증인 변호인의 말을 조합하면서다.

피고인은 4차로를 운전하다가 보행자를 쳤다. 그는 원심에서 무죄 판정을 받았다. 검사는 “서행 의무와 높은 차량 위치로 인해 피해자를 볼 수 있었다”며 항소했다.

종합하면 이렇다. 피해자 등 4명이 택시를 잡으려고 보도에서 내려왔다. 3차로와 4차로에 택시가 있었는데 피해자의 갑자기 무단횡단하면서 택시가 급제동했다. 불빛과 다른 택시로 인해 키 작은 피해자가 가려졌다. 반정모 판사가 정확히 짚어내자 검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법정에서 판사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유·무죄를 가리고 죄의 무게까지 결정한다. 죄의 무게를 법정에서는 양형이라고 한다. 판사는 법에 근거해 간단하고 명료하게 양형을 정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은 선고를 내리는 순간까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피고인은 음주운전을 하고 현장을 이탈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사건 당일에는 임신 중인 아내가 하혈을 했다. 또 아이가 조기 출생했는데 뇌전증을 앓는다고 했다. 그는 원심의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차은경 판사는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한다며 말했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2년간 집행유예와 보호관찰을 선고한다. 피고인은 준법 운전 강의 40시간과 사회봉사를 명령한다.” 피고인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판사에게 “감사하다”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 법정 준수사항. 서관 2층 로비에 있다.

이준민 판사는 1월 29일 오후, 3건의 선고 공판을 맡았다. 2명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으로 기소됐다. 이 중 1명에게 판사는 “가볍지 않은 범죄”이지만 피해자와 합의했고 동영상을 유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른 피고인은 피해자와 성관계 도중 핸드폰을 들어 촬영한 혐의였다. 판사는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음을 보아 범행 미수를 인정해 유죄로 판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슷한 범죄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벌금 500만 원과 40시간의 성교육 이수를 내렸다. 그는 재판을 매우 빨리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특수폭행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합의가 되었으므로 벌금 150만 원에 처한다”며 재판을 마쳤다. 판사의 오후 일정에서 하나가 끝났다. 그는 예상보다 15분 일찍 마무리했다.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정해진 틀이 있는 듯했다. 목소리는 일관적이었다.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 주민등록번호”로 시작해 “7일 내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 “죄가 가볍지는 않으나”, “이 점을 고려해”, “다시 말씀드리면”이라고 정리하며 끝냈다.

취재팀이 지켜본 재판에서 독단적인 판사는 없었다. 반말하는 판사도 없었다. 그들은 진중하고 겸손했다. 피고인이 억울해하면 달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조용하지만 엄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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