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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로 불리는 정규직

기사승인 2021.04.04  18: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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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의 도명화(48) 씨는 사내 커뮤니티에 접속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을 겨냥한 게시물의 혐오 표현이 점점 심해져서다. ‘좀비가 말 걸어서 기분 잡쳤네요’ 같은 식이다.

도 씨는 정부 방침에 따라 작년 5월에 정규직이 됐다. 전환 과정에서 업무가 수납에서 환경미화로 바뀌었다. 정규직으로 고용됐다는 기쁨이 더 커서 개의치 않았다.
 
기쁨은 잠시였다. 기존 직원의 차별이 시작됐다. 출근 첫날, 도 씨를 포함한 미화 직원은 “허락 없이 휴게시간에 대기실을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건물 안을 돌아다니면 사내 질서가 흐트러진다는 이유였다. 황당했지만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다.

대기실은 컨테이너박스다. 4평 정도. 성인 여성 5명이 다리를 뻗으면 꽉 찬다. 이곳에서 10명 정도가 서로의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등을 세우고 몸을 잔뜩 웅크리면 빈자리가 생긴다. 여기에 테트리스를 하듯 다리를 끼워 넣는다. 옆 사람과 간격이 너무 가까워 숨소리가 들릴 정도다. 몸을 뒤척이기 힘들지만 매일 이곳에서 몸을 녹이고 밥을 먹는다.

▲ 미화 직원 대기실

도 씨는 회사에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다. 열악한 근무 환경을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3개월이 지나도록 답변을 받지 못했다. 참다못해 찾아갔더니 팀장은 “얘기할 용의가 없으니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정규직이 됐지만 사실상 바뀐 게 없어요.” 도 씨의 말이다. 이런 가운데서 적대적 분위기가 늘었다. 고집부리고 떼써서 들어온 애들, 수준 낮은 애들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도 씨가 바라는 점은 하나다. “우리를 동료로 인정해주세요.”

모 공공기관 경기도 지부의 김지효 씨. 2018년 12월에 무기계약직이 됐다. 원래는 사무 보조직이다. 무기계약직이 되고 업무량이 늘었다. “계약과는 다른 업무를 맡았고, 사실상 일반직과의 업무 경계가 모호했어요.”

처우는 달랐다. 일반직은 진급하면 연봉이 최대 1억 원까지 오른다. 무기계약직은 등급(A~F)에 따라 5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진급기회 역시 없다. 연차가 쌓이면 회사에서 부르는 호칭만 달라진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발간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동일‧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은 그에 해당하는 직군의 임금 체계를 적용받는다’라고 나온다. ‘동일‧유사 직종에 종사하는 기존 근로자와의 차별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김 씨는 회사에서 ‘실무직 김지효’로 통한다. 무기계약직 근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채로 들어온 정규직은 행정직 혹은 기계직으로 표현한다. “꼭 신라 골품제 같아요.”

한국잡월드 파트너즈의 이진형(45) 씨는 어린이체험관 강사다. 2019년 1월에 자회사의 정규직이 됐다. 체험관에는 미용실, 피자가게, 소방서 등 직업 51개가 있다. 참가자가 하나를 30분 동안 체험하면 대기시간은 10분. 이때도 다음 체험을 준비한다. 쉬는 시간이 빠듯하다.

▲ 휴게실 구석의 탈의실

휴게실에는 탈의 공간이 따로 없다. 테이블 2개와 의자 6개가 전부. 이 씨를 포함한 강사는 작은 탈의실이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급하면 복도에서 입었다.

이 씨를 포함한 자회사 직원이 “탈의실을 만들어 달라”며 작년 11월 정식으로 건의했다. 원청인 한국잡월드와 자회사인 한국잡월드 파트너즈는 휴게실 한쪽에 ‘간의 탈의실’을 만들었다. 천장에 샤워 봉과 커튼을 달았다. 바뀐 탈의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정규직의 심경도 복잡하다. 한국도로공사의 이민동 씨(32)는 “미화 직원들이 전환 과정에서 회사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며 “이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골적인 차별에는 선을 그었다.

한국철도공사의 하정민 씨(31)는 전환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회사가 직고용하지 않고 무기계약직 혹은 자회사 직원으로 고용하기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비정규직 일부는 시험을 통해 본사 정규직으로 편입해야 한다.”

한국도로공사 조직혁신팀 관계자는 “사 측도 현장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양한 대화 창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는 작년 2월에 일반직과 노조 대표자가 참여한 ‘갈등관리상생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시각 차이로 운영이 보류됐다.

 

 

 

 

이서희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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