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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지금 (1) “제발 도와주세요”

기사승인 2021.04.11  18: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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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미얀마인을 찾아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신청했다. 모르는 문자로 쪽지가 왔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임을 나중에 알았다.

미얀마 상황을 취재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얀마어는 네이버 번역 서비스(파파고)에서 지원하지 않는 언어다. 그러던 중, 미얀마의 만달레이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 린과 연락이 닿았다.

린은 인터뷰가 가능한 현지인을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취재팀과 주고받은 메신저를 캡처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게시물이 4시간 만에 1000회 이상 공유되면서 미얀마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미얀마를 살려주세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미얀마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움을 청했다. 한국어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8명과 페이스북 메신저 및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이름은 일부만 기재했다.

▲ 린의 페이스북 게시물

만달레이에 사는 20대 대학생 노노는 “질문에 대답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총과 폭탄 소리가 들린다. 집 주변에서 또 총격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밤에는 제트기 소리까지 들려 잠을 제대로 자는 날이 거의 없다고 했다.

미얀마 군부는 2월 19일부터 시민에게 총격을 가했다. 어린이까지 희생당했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에 따르면 4월 2일 오전 10시 2분(현지 시각)을 기준으로 543명이 사망했다.

시위대의 주축은 10대와 20대라고 한다. 만달레이 외국어대의 케이에 따르면 학생을 중심으로 의사, 엔지니어, 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이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대는 지역의 대학교 학생회를 중심으로 조직된다. 시위 장소와 시간대는 ‘바카타’라는 학생 연합이 주도해서 정한다. 주로 페이스북과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한다.”

대학생 툰은 “연행된 학생들이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침에 사람을 잡아가면 오후에 시체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혁명의 날’(군부는 ‘미얀마 군의 날’이라고 부름)인 3월 27일에는 114명 이상의 희생자가 생겼다. 그중 12명은 어린이였다.

라시오에 사는 몬은 “기차역에서 놀던 1살짜리 아이가 총에 맞아 숨졌다. 11살 아이 역시 아무 잘못 없이 군인에 의해 죽었다”고 설명했다. 7살 여자 어린이는 집에 있다가 급습한 군인의 총격으로 숨졌다.

대학생 아란은 “군부는 희생자 수를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민간인을 유혈진압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군부에서 시신을 없애는 일도 허다해 실제 사망자는 훨씬 더 많다”고 밝혔다.

▲ 진압 중에 다친 어린이(몬 제공)

이에 맞서 시위대는 방패와 화살을 들었다. 몬은 “우리는 여태껏 무기 없이 시위했다. 그러나 군부는 휴대용 로켓무기와 기관단총을 (시민에게) 쐈다”며 “이제는 방패와 막대기, 화살과 폭죽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부상을 입어도 치료를 받기는 어렵다. 의료진이 시위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고 시설이 열악하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개인 병원에서 치료받지만 군인에게 발각되면 환자는 물론 의사까지 구타당하고 잡혀간다.

대학생 노노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군부 독재에 의해 자유와 미래를 잃는 것이 더 두렵다”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우리는 집에 있기만 하면 안전했다. 하지만 군부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이제는 집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 대학생이 시위하는 모습 (노노 제공)

공무원과 교사, 철도 근로자와 회사원 등 각계각층의 미얀마 시민이 파업에 참여했다. 툰은 “쿠데타 초기에 사재기 현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다들 조금씩 양보한다”며 “시민들이 중국이나 군부에서 제작한 물품을 불매해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문제는 수입이 끊겼다는 점이다. 출근 보이콧을 통해 군부를 압박하다 보니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힘들다.

양곤 외국어대의 쑤는 “(미얀마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많다. 군부의 폭력 진압으로 인해 장 보는 일이 어려워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토로했다. 케이는 “돈을 벌지 못해 가족 모두가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간신히 생활한다”고 말했다.

군부는 3월 15일 이후 미얀마의 모바일 데이터 사용을 전면 차단했다. 시민 사이의 정보확산과 소통을 막기 위해서다.

양곤 등 일부 대도시에서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지만 접속 상태는 불안정하다. 노노는 “시골이나 작은 마을에는 와이파이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 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아란은 “와이파이만 겨우 잡히니 시위에 나가도 현장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고 위험에 처해도 도움을 구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인터넷에 우회 접속하는 가상 사설망(VPN·Virtual Private Network)을 이용해 현지 상황을 외부세계에 전한다.

미얀마의 민영 언론은 모두 통제됐다. 미얀마 작가 찬찬은 2월 18일 KBS <더 라이브>에 출연해 “TV 방송은 군부 소속 방송국(MWD, MRTV)의 뉴스만 송출한다. 군부를 지지하는 연기자를 섭외해서 가짜 자료 화면을 만들고 가짜 인터뷰를 하게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중년의 남성 연기자가 의사 가운을 입거나 운동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군부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식이다. 미얀마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며 국민이 군부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양곤대의 캬잉은 “해외의 미얀마 보도를 많이 봤다. 미얀마 언론이 보도하는 뉴스에 비해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신 기자는 현지 상황을 알리려 애쓰는 중이다. 일본 기자는 군부에 체포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노노는 “우리 손으로 투표한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taw)에 대한 지지를 국제사회가 보여주길 원한다. 우리의 목표인 연방 민주주의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캬잉은 기부 역시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연방군을 지원해달라. CRPH가 연방군 지원 자금을 전 세계에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툰은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 시민은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한다. 나 역시 목숨과 내 모든 걸 바쳐 참여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뒤부터 웃는 것도 죄처럼 느껴진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방법은 단 하나, 우리가 이기는 것이다.”

 

 

 

 

이혜인·소설희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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