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유통단지(가든파이브)가 조용하다. 청계천 복원 공사로 영업 터전을 잃은 상인을 위해 지었던 곳. 여기서 청계천 상인을 찾기 힘들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손님이 없고, 손님이 없으니 상인이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유산화 씨(61)는 가든파이브 리빙관에서 수입 잡화를 팔았다. 임대료를 못 내서 2013년 명도소송으로 쫓겨났다. 그는 “가든파이브에 남은 청계천 상인이 60~70명”이라고 한다.

SH공사에 따르면 가든파이브 점포는 라이프동(5366호), 웍스동(734호), 툴동(2270호)을 합쳐 8370호다. 청계천에서 옮긴 점포가 1%도 안 되는 셈이다.

▲ 가든파이브 툴동 5층이 텅 비었다.

서울지하철 8호선 장지역 3번 출구로 나오자 왼쪽의 상가에 ‘임대’ 종이가 보였다. 거기서 15m 걸으면 가든파이브 라이프동 지하 1층 패션·영관 입구가 나온다.

역과 가까워서 한때는 서울 중구의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옮긴 상인이 많았다. 지금은 250개 정도의 점포에 청계천 상인이 6명 남았다. 조화, 레코드, 이불, 속옷, 화장품, 담배 가게 주인.

조화 가게에 들어서니 주인 반종섭 씨(77)가 어항의 물고기를 보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7시간 동안 어항을 보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물고기랑 텔레비전이나 본다. 심심하니까. 보다시피 사람이 안 다니잖아.”

▲ 상인 반종섭 씨는 손님이 없어 어항 속 물고기만 본다.

그는 12년 전에 청계천의 비디오 가게를 접고 가든파이브 점포 3개를 분양받았다. 매출은 없지만 고정 지출이 있으니 장사를 포기할 수 없다.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 이자 내야지, 관리비 내야지. 집에 있어도 관리비는 나오니까. 옴짝달싹 못 하는 거지.”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박노성 씨(74)는 가든파이브를 곧 떠날 예정이다. 더이상은 못 견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박 씨는 7평 남짓한 가게를 2억 9700만 원에 분양받았다. 분양가가 예상보다 높았다고 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그랬거든. 많이 가야 8000만~9000만 원이라고. 1억은 절대 안 넘는다고 했어. 와보니 분양가가 2억~3억 원씩 돼버린 거야. 이미 청계천에선 장사를 접어버린 상태고.”

이불 가게의 이은성 씨(63)도 비슷한 상황이다. 두 가게를 4억 7500만 원에 분양받아 현재 담보가 2억 7500만 원이다. 이자와 관리비를 내기 위해 집도 팔았다. “본전도 안 나온다. 힘들어서 가게를 팔려고 내놓아도 거래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장사하고 있다.”

거래가 안 되는 이유는 상가를 한꺼번에 매각하거나 임대하는 정책 때문이다. SH공사는 “가든파이브는 집합 건물의 특성상 타 유통시설과 다르다. 대형 테넌트(임차인) 유치, 소상공인 입점으로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서면으로 대답했다.

가든파이브에는 현대시티몰과 NC백화점이 있다. 3월 19일 정오에 찾은 가든파이브는 중앙광장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세상으로 나뉜 모습이었다. 현대시티몰 지하는 점심을 먹으려는 시민으로 붐볐다. 반면 청계천 상인이 입주한 지하상가는 텅 비었다.

▲ 가든파이브의 중앙광장

“NC백화점으로 손님이 가지, 청계천 상인 쪽으로는 아예 안 와요. 건물 구조상 동선도 차단해서 올 수도 없고요. SH공사는 청계천 상인 100명보다는 일괄 임대할 한 명을 상대하는 게 편하잖아. 상인 길들이기에 맛을 들인 거지.”

청계천에서 옮긴 유산화 씨는 SH공사의 일괄 임대 계획에 대해 “터전을 잃은 상인을 수용하겠다는 의미가 처음부터 퇴색됐다”며 “가든파이브에 청계천 이주 상인을 정착시킬 의지가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 많던 청계천 상인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상인들은 3월 20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와의 면담에서 SH공사에 대한 감사와 이주 상인에 대한 전수조사 및 보상을 요구했다.

유 씨는 “6000명 넘는 상인이 청계천을 떠나 정착 못하고 실패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다른 대체 상가로 보상해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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