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청석에 앉아 계신 분들은 다 어떻게 오셨죠?” 2월 1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523호에서 박현숙 판사가 질문했다.

경위가 “방청하러 오신 분들이에요”라고 대신 대답했다. 뒤를 돌아보니 남성이 메모를 열심히 했다. 법정 문을 나서면서 그에게 물었다. “방청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법률소비자연맹 봉사하러 왔어요.” 지구과학교육을 전공하는 정근규 씨(22)는 작년 여름부터 연맹의 봉사자로 법정을 모니터링한다. 겨울방학 동안 1주일에 두세 번 법원을 방문한다.

재판이 열리는 동안 방청석에서 내용을 받아 적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절차를 잘 지키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판사가 재판 전에 도착하는지, 형사재판에서는 판사가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고지하는지, 그리고 당사자를 존중하는지 관찰한다.

연맹이 만든 법정 모니터링 양식에는 30개 문항이 있다. 시간 준수 여부, 재판장의 태도, 당사자의 변론 태도, 변호사의 변론 준비, 법정 관계인의 태도 등이다. 재판내용을 적는 사건 기록지는 따로 있다.

법원 복도에는 재판 당사자, 변호사, 증인, 방청인을 위한 무기명 설문 조사지가 있다. 연맹이 만든 양식과 비슷하다.

▲ 법정 모니터링 양식(출처=법률소비자연맹)

법률소비자연맹은 1994년에 활동을 시작한 시민단체다. 사법 권력을 감시해 법률 소비자의 권리를 실현하려 한다. 법정 모니터링은 연맹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학기마다 봉사자 300명 이상이 참여한다.

봉사자는 재판의 절차적 문제 외에도 졸거나 반말하는 판사, 고압적인 검사, 준비가 되지 않은 변호사를 감시한다. 모니터링 결과물은 해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공한다. 2013년에는 ‘법정백서’로 발간했다.

국내 최초의 법정 모니터링은 법학과 대학생 봉사자를 중심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정 씨처럼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참여한다. 공통점은 법에 대한 관심.

“예전부터 법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에서도 관련 수업을 들었어요. 방학 때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법 관련 활동을 알게 되어 참여했습니다.” 서울서부지법을 10번 방문한 조영우 씨(25)의 말이다.

이승아 씨(25)는 작년 여름,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정을 모니터링하면서 진로를 고민했다. “시험 삼아 준비 없이 법학적성시험(LEET‧리트)에 응시했는데 점수가 상당히 괜찮았어요. 진로를 고민해보고자 활동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방청인은 사건 내용을 잘 모르니 재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민사재판은 무엇 때문에 다투는지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워요. 근데 형사재판은 사건명이 쓰여 있어서 대충 알 수 있고, 내용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 공소유지라든지….” 정 씨가 말했다.

연맹의 윤소라 대외협력부장은 “피고인과 피고를 구별하지 못하는 봉사자가 있다”며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오리엔테이션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에는 봉사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학기당 두 번, 3시간 30분씩 대면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 법원의 설문조사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은 코로나 19로 인해 방청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방청석 거리두기로 인해 증인과 피고인이 많으면 방청인에게 허용되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느낀 불편함에 대해 정 씨도 동감했다.

“1월 초에 코로나 때문에 방청 제지당한 거? 그리고 직접 방문하지 않는 이상 (재판) 일정을 알 수 없으니까….”

조 씨는 “코로나 19로 인해 재판 숫자가 줄었고 법조인의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법정 모니터링은 법원 풍경을 바꿨다. 경어와 마이크 사용, 시간대별 진행은 연맹의 문제 제기로 생긴 변화다. 이전에는 재판 당사자가 오후 2시에 몰려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재판에 참여했다.

사건번호 순서가 아니라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부터 먼저 진행되는 ‘새치기’ 재판도 많았다. 현재는 피고인이 재판 시간에 맞춰서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사전에 게시된 순서대로 재판을 한다.

조 씨는 “방청하기 전에는 재판이 딱딱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판사가 경어를 사용하고 피고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취재팀과 함께 2월 16일 재판을 방청한 정 씨는 “판사가 진술거부권을 명확한 목소리로 고지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재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피고인이 웅얼거리면 박현숙 판사는 “잘 안 들려요”라며 다시 묻거나 “마이크에 대고 말씀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행위는 존재했지만 의사에 반한 추행은 없었다는 의미입니까?”라며 변호사 발언을 정리해서 재판을 이해하기 쉬웠다.

그럼에도 개선해야 할 점은 있다. 법원의 오래된 권위주의다. 윤 부장은 “아직도 구두변론보다는 서면 재판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판중심주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판중심주의는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재판정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원칙이다. 조서를 바탕으로 하는 서면 재판은 신속성을 높이고 쟁점을 명확하기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공판 밖에서 작성한 조서가 법관 판단의 기초가 된다면 공개재판의 원칙이 훼손되고 당사자의 권리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

윤 부장은 형사재판 하나를 예로 들었다. 피고인이 24명인 재판에서 판사는 “검사실에 가서 증거를 열람하라”고 변호인에게 말했다.

증거조사는 공개된 법정에서 피고인과 검사가 증거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검사실에 다녀온 피고인과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하면 세무조사하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검사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법정 모니터링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윤 부장은 “지방의 경우에는 아직도 출입을 통제하거나 봉사자가 법정에서 기록하는 일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법원 경위가 방청, 모니터링 관련해서 좀 더 인지해야 할 것 같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종이에 기록을 하는데 너무 이상하게 쳐다보고 감시해서 마음이 좀 불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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