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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플라자 4년

기사승인 2021.05.02  21: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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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공간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 강서구에 2024년 준공 예정인 ‘어울림플라자’에 대해 주객이 전도됐다고 지적했다. 4년여의 협의 끝에 사업이 진행되는 점은 환영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울림플라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전국 최초의 복합 문화복지 공간이다. 장애인 연수시설과 장애인치과병원, 도서관, 체육센터, 공연장, 수영장 문화센터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2013년 지방 이전이 확정된 강서구 등촌동의 한국정보화진흥원 부지를 매입하고 ‘서울 장애인플라자’ 건립을 계획했다. 주차장 확대 등 주민 요구를 수용하면서 어울림플라자를 만들기로 2015년 결정했다.

서울시가 2020년 7월 배포한 ‘어울림플라자 안전대책 설명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복지시설은 5층 장애인치과병원과 3~4층의 장애인 연수 시설과 일부 층의 사무실이다. 전체 시설(2만 3892㎡)의 약 20%(4875㎡). 2016년 4월의 기본 구상안에는 장애인 복지시설이 7510㎡였다.

▲어울림플라자 공사 현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가 운영하는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의 이은자 센터장은 서울시가 주민 의견을 계속 수용한 결과라고 했다. 강서구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진형조 회장은 장애인 시설이 축소된 점에 대해 “장애인의 권리를 비장애인에게 뺏긴 셈”이라고 말했다.

대구대 조한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주민 반대가 심하니까 설득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던 것 같다”며 “장애인 단체가 좀 많이 양보한 느낌이 있고 원래 취지가 많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위탁한 공사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근린생활 시설이 들어오느라 장애인 시설의 비중이 줄어든 것도 있다”며 “여기에 주민 요구를 반영하느라 전체 면적이 늘어나 상대적으로 (장애인 시설의) 비율이 줄었다”고 말했다.

규모가 축소된 공간 중 하나는 주민이 계속 반대한 연수시설이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강서지회 유미라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와서 잠을 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고 반대하는 주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연수시설은 어울림플라자의 핵심기능이다. 장애인 단체는 처음부터 장애인이 세미나를 하고 연수프로그램을 하는 시설을 원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상희 활동가는 “비장애인 위주의 공간은 차고 넘치지만 장애인은 편의시설, 이동 접근성 때문에 이용할 시설이 많지 않다. 장애인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마다 공간 섭외의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형조 회장은 “주민이 원하는 시설을 넣느라 (연수시설 객실이) 20개로 줄었다. 방 20개는 단체 하나도 다 못 들어간다. 적어도 50명은 이용해야 세미나를 열든 교육을 하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는 서울 동작구의 서울여성플라자를 자주 활용한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객실은 28개다. 1인실부터 15인실까지 다양해 최대 128명까지 가능하다. 어울림플라자는 장애인 전용으로 2인용 객실이 20개다.

무장애연대 김남진 사무국장은 “처음에 계획했던 장애인 시설이 줄어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바뀐 것부터 지역 사회에서 장애인과의 공존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건물을 같이 쓰는 것 자체가 공존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층에 장애인 전용시설을 배치한 점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이은자 센터장은 “장애인을 위한 치과나 연수시설을 1~2층이 아닌 높은 층에 만든다고 한다”며 “장애인 이용시설이 20%밖에 안 되도 접근성을 고려해 아래층에 배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어울리는 공간인가

어울림플라자를 놓고 갈등이 오랫동안 이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취재팀이 만난 장애인 단체와 전문가, 주민, 학부모는 △ 이해당사자 간 소통 부족 △ 장애인에 대한 여전한 편견 △ 장애인·비장애인 시설을 비율로 구분한 점을 꼽았다.

서울시는 2017년 8월 주민공청회를 시작으로 인근 초등학교인 백석초 학부모, 지역주민과 면담했고 2020년 7월에는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주민협의체도 만들겠다고 했다. 협의체에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체장애인협회, 시각장애인연합회 등 장애인 단체의 7명이 포함됐다.

주민협의체의 현황을 묻자 서울시 관계자는 “철거공사 시작 전인 지난해 11월에 1차 회의를 서면으로 했다”며 “그 이후에는 (협의할) 안건이 없어 회의 등 소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형조 회장은 “주민과 이야기할 창구가 현재 없는 상태”라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중재해서 장애인 대표, 비장애인 대표, 서울시 관계자가 발전적인 대화를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민희 팀장은 “(어울림플라자가) 장애인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소개하면서 서울시는 주민하고만 활발히 소통했다.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장애인 단체와 공식적으로는 공청회 1번, 주민설명회 1번으로 모두 2회 만났고 주민과는 2017년 공청회 이후 30차례 이상 소통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작년 7월에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 장애인 단체에서 대화하자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어울림플라자가 장애인 시설이라서 사업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와 상인은 부정적인 편이었다.

어울림플라자 근처의 상인은 “주민이 반대하는 건 집값이 떨어질까 그런 거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와서 집값이 올라간다고 하면 다 유치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해당 부지가) 공항대로 변이라 평당 4000만 원 정도 한다. 좋은 위치에 장애인 이용시설이 들어온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장민희 팀장은 “상생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는 곳 말고 다른 곳에 세우라고 얘기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아픔을 많이 느꼈다”며 아쉬워했다.

▲ 서울장애인부모연대의 회원들이 취재팀을 만났다.

김남진 사무국장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노는 ‘통합놀이터 만들기’ 운동을 하면서 장애인 시설에 반감을 갖는 지역 사회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부산의 아파트 단지에 통합놀이터를 만들려 했지만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지역주민들이 왜 우리 단지에 장애인 놀이터를 만드냐고 강하게 항의해서 결국 부지를 옮기게 된 적이 있었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자신들(지역주민)이 피해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음을 느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김필순 기획실장은 “강서구는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설립할 때 주민이 반대해서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던 아픔이 있던 지역”이라며 “장애인 시설에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사업이 좌초될 위기라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공사를 하려면 바로 옆의 백석초 학교장이 서울시의 ‘통학로 안전 확보 계획서’를 승인해야 했지만 학부모 반대를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서울장애인부모연대는 11월 2일 각각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김필순 기획실장은 “학교장을 만나 설득한 결과 (학교장이) 입장을 바꿨고 실제 행진이나 1인 시위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과 집회신고 이후인 11월 17일, 백석초는 ‘통학로 안전 확보 계획서’를 수용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는 예비 장애인이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백석초 교직원과 학부모회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밝혔다.

어느 학부모는 “가정통신문이 나간 이후에 학부모들도 그런(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특별한 반발은 없었다”면서도 “처음부터 학교가 적극적으로 (장애인·비장애인 복합 시설을) 지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배제 아닌 공존의 공간이 되려면

어울림플라자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의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는 없었다. 전문가와 장애인 단체 모두 전국 최초의 장애인·비장애인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핵심은 진정한 공존의 공간이냐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도서관과 수영장 등 시설의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조한진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참여하는 프로그램과 시설을 이용하는 시간이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 시간과 동선이 다르면 복합 공간의 의미가 사라진다. (프로그램과 이용 시간을 분리한다면) 백인과 흑인이 쓰는 시설이 각자 따로 있고, 버스에서 백인이 오면 흑인은 일어서야 했던 1960년대 미국의 흑백차별과 다를 바가 없다.”

인천대 전지혜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장애인 전용 수영장을 비장애인도 사용하는 곳으로 변경한 후 비장애인 사용 빈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장애인은 사용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며 “복합 공간으로 만들 땐 비장애인 전용으로 변질되지 않게끔 주의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어울림플라자가 공존 공간이 되려면 장애인이 복합 공간을 실질적으로 이용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느린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서울시는 2019년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지원 사업을 마포구 은평구 송파구에서 시행했다. 발달장애인과 같은 느린 학습자가 자유롭게 떠들면서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다.

조한진 교수는 어울림플라자가 초등학교 근처에 들어선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초등학생이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학습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특수학교가 부동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없다는 사실은 연구 결과로 증명됐다. 교육부가 2017년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특수학교 167곳 주변의 땅값을 조사했더니 2006~2016년에 특수학교 인접 지역(반경 1㎞)은 평균 4.34%, 1~2km 떨어진 곳은 4.29% 올랐다.

백석초 근처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하는 손미녀 씨(58)는 “어울림플라자 착공이 확정된 이후 주변 상권 및 집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며 “상권이 형성돼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시설을 반대하던 여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울림플라자가 진정한 공존의 공간이 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사회로 나아갈 지름길을 다져줄 거라고 하나같이 말했다.

“시작은 아쉬웠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이후에 제2, 3의 공존 시설이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한진 교수)

“비장애인이 ‘내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좋은데?’, ‘이런 시설이 들어오니까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잘 운영하면 좋은 선례가 돼서 다른 지역에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들어갈 때 수용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김남진 사무국장)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치과 시설과 연수시설뿐만 아니라 1층부터 5층까지 장애인이 많이 오가면 좋겠다. 비장애인과 함께 활발히 이용하는 공간이 되면 다양한 통합적인 일도 많이 할 수 있다. (전지혜 교수)

 

 

 

 

 

모재성·유하영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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