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경을 쓴 여성이 낫을 들고 바다로 들어간다. 물속은 에메랄드 빛깔. 울퉁불퉁한 바위 옆으로 미역이 보인다. 물고기는 카메라에 놀라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 부력 기구인 테왁과 해산물이 가득한 망사리가 눈에 띈다.

여성은 수면 위로 올라와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쉰다. 바다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제주 이호바다의 2년 차 해녀, 이유정 씨. 취재하러 제주로 갔는데 날씨 탓에 물질이 어렵자 이 씨는 기자를 위해 전날 영상을 보여줬다.

요즘 해녀의 모습이 궁금해서 인스타그램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바로 수락했다. 5월 16일, 종일 따라다니며 물질하는 모습을 보려 했다. 비가 쏟아지자 어쩔 수 없이 오후에 한수풀해녀학교에서 만났다.

매일 아침 이 씨는 이호해녀회 탈의실에 간다. 다른 해녀와 함께 바다 상황을 보며 기다린다. 바다가 잔잔해서 물질이 가능하면 고무 옷을 입고 트럭 뒷좌석에 탄다. 이 씨는 해녀회 막내. 차를 몰고 바다로 향한다. 

▲ 이유정 씨가 바다에 가려고 운전하는 모습(출처=인스타그램)

“아우욹.” 이 씨는 자신의 숨비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올 때 내는 소리.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고 한다. 1~2분 동안 바닷속을 돌아다니며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숨을 못 참을 때쯤 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비소리를 내뱉는다.

오후에는 고깃집으로 간다. 작년부터 시작한 사업. 불턱(해녀가 물질을 하고 나와서 쉬는 곳)에서 소라, 고기, 해산물을 구워 먹던 옛 방식을 재현했다. 이 씨는 해녀의 전통 작업복을 입고 수경을 머리에 낀 채 고기를 굽는다. 손님에게 해녀의 역사와 가치를 알려주면서.

이 씨는 바다 정화 활동도 매일 한다. 반려견 이호와 함께 아침, 저녁 1시간씩 쓰레기를 줍는다. 공식적인 바다 정화행사도 꾸준히 참여한다.

“이렇게 에너지가 엄청난 사람은 처음 봤어요. 유정이는 제주도에 꼭 필요한 인재에요.” 해녀학교에서 만난 마이클의 말이다. 두 사람은 서귀포 대평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났다. 마이클은 30대 한국인 남성이다.

이 씨는 고령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해녀에 대한 사명감과 해녀 문화를 지키고 싶다는 책임감이 가득하다. 삶의 원동력이 해녀라는 직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 이유정 씨가 바다 쓰레기를 줍고 있다. (마이클 제공)

이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제주 이호동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관광 도시 제주도에서 살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 후 직장에 들어가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했다.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라서 할 수 있는 일, 나만의 일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졌다. 그러다 본가인 이호동에 어느 날, 해녀 삼춘을 보았다. 제주도에서 ‘삼춘’은 남녀 상관없이 동네 어르신, 윗사람을 일컫는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해녀삼춘 뒤에 후광이 비쳤어요. 정말로.” 해녀는 물질하고 막 나와서 물에 젖었지만 누구보다 빛나 보였다고 이 씨는 회상했다. 짧은 순간이 인생을 바꿨다. 한수풀해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렇게 바라던 해녀가 됐다.

해녀를 하겠다고 말하자 부모는 반대했다. 아버지는 평생 어부였다. 어머니는 조업 나간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살아왔다. 누구보다 바다의 위험을 안다. 당신의 자식이 더운 날에는 에어컨 아래에서, 추운 날에는 따뜻한 곳에서 일하길 바랐다.

그러나 이 씨는 직장인으로서의 편안한 삶보다는 제주 해녀의 가치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능력만 된다면 평생 해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도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 씨가 말하는 해녀의 가치는 무엇일까.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왜 해녀를 선택했을까. 그는 ‘문화 계승’이라 말했다. 제주 해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 지키고 싶다는 뜻이다.

해녀는 물질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경쟁해서도 안 되고 분수껏 물질을 해야 한다. 물속에서 위험이 닥칠 때, 가장 빠르게 도와줄 사람은 동료 해녀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물질은 개인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동료에 대한 애틋함과 책임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씨는 이런 배려의 문화를 가진 해녀공동체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해녀공동체 안에 스며든 자기 모습도 멋지다며 했다.

해녀는 기량에 따라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 순으로 나뉜다. 이 씨는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한다. 등급이 높은 해녀삼춘보다 해산물 수확량이 적다. 그럴 때마다 삼춘들은 이 씨의 망사리에 수확물을 한가득 넣어주며 격려한다.

하루는 홍례 삼춘이 “100kg 해야 돈 벌지!”라며 미역을 이 씨 망사리에 가득 담았다. 자신과 타인의 물질 능력을 비교하지 않는 자세. 한계를 인정하고 바다를 누비되 서로 생각하고 함께한다. 해녀의 공동체 문화다.

▲ 이유정 씨가 해변에서 포즈를 취했다. (출처=인스타그램)

이호마을 해녀 회원은 21명이다. 이 씨가 가장 어리다. 두 번째로 어린 해녀는 65세이다. 해녀 문화를 이어갈 40~50대가 없다.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다. 제주 해녀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제주에 등록된 해녀는 3613명이다. 1년 사이에 200명 넘게 줄었다. 60대가 30.2%, 70대가 44.3%다. 50세 미만은 2.3%.

이 씨는 해녀학교의 커리큘럼이 더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물질하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정식 해녀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고 말한다. 해녀학교의 교육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해녀협회 간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예비 해녀가 느끼는 ‘텃세’ 역시 줄이려고 한다. 해녀가 되기를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정이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비 해녀 중 일부는 해녀회나 어촌계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텃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보자고 마을 어르신을 설득한다. 

이 씨의 목표는 대상군이다. 20m 정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해산물을 캐야 하고 리더 자질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외롭다. 자긍심을 가지고 해녀 문화를 같이 계승할 젊은 해녀 친구가 거의 없어서다.

“해녀의 미래를 위해 혼자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아요. 같이 이곳저곳에서 해녀를 알리고 서로를 응원하는 벗이 있었으면 해요.”

강인하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처음으로 고독해 보였다. 해녀를 지키는 일에 부담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 걱정됐다. 평생 해녀를 함께할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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