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대학로 극단에서 연극을 했다. 코로나 19로 공연이 미뤄지고 취소됐다. 생계가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기사로 써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는 기자 별로 안 좋아해.”

휴대폰 너머로 들으면서 괜히 울컥했다. 분노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기자는 사람을 이용하고 사실을 과장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밤새 뒤척였다.

무엇이 친구에게 고정관념을 만들었을까. 매일 인터넷에서 기사를 본다.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이 보인다. 이게 모두 다 사실일까. 의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새삼 궁금했다. 기자가 되겠다면서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책 하나가 떠올랐다. 작년에 줌(화상 채팅 앱)으로 동아일보 특강에 참여했다. 현직 기자가 끝날 때쯤 말했다. “나만 알고 싶은 책인데….”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였다.

저자는 새뮤얼 프리드먼. 미국 뉴욕타임스 출신으로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원서는 <Letters to a young journalist>. 2007년 1월 30일 출간됐다. 뉴욕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됐다.

▲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번역본(왼쪽)과 원서(출처=미래인과 아마존닷컴 홈페이지)

큰 기대는 없었다.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마음속에 담아뒀다. 그저 그런 얘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다 읽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책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책을 열 때는 친구를 만나고, 닫을 때는 멘토를 얻는다. 저자가 20대 시절 경험부터 학생을 가르치면서 얻은 깨달음까지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볼펜 한 자루, 취재용 수첩! 우스꽝스런 복장보다 중요한 것이 기자의 전투 장비가 아니던가?” 인턴기자 첫 출근날, 저자의 모습이다. 지방 신문사 쿠리어 뉴스에서였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저널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지.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이었다. 순서는 이렇다. 저널리즘의 미래, 저널리스트의 자질, 취재하기, 기사 쓰기, 경력 관리하기.

언론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지고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저널리즘이 죽었고 미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단언한다.

“지적 호기심이 살아 있는 훌륭한 안목, 용기가 뒷받침된 취재와 탐사기획, 정확한 분석을 담보한 날렵하고 멋진 스타일의 글쓰기는 결코 낡아 빠지거나 유행을 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저자는 기자의 자질을 네 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토트’신을 섬기라고 한다. 토트는 천칭 저울을 사용해 죽은 이의 공덕과 죗값을 판단한다. 공평무사하게 해야 한다.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도덕이 중요하다.

“물론 당신이 품었던 이상주의란 오랜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 희미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의 등불은 여전히 등대와도 같은 것이다. 때로는 바람에 흔들려 깜빡거리거나 가물거릴 수 있겠지만, 꺼져서는 안 되는 것이 ‘도덕적 저널리스트’라는 명제다.” (50쪽)

“내가 요청하는 도덕적 저널리즘은 진정 그 사회와 시대의 증언자 역할에 성실하라는 주문이다. 인간이 연출해내는 위대한 성취의 순간을 함께하며, 사회 부패와 정치 부패에서 보이는, 즉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타락 앞에 우뚝 서서 용기 있게 입을 열라는 것이다.” (53쪽)

다음으로 기자는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고 했다. AP통신의 닉 우트 기자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 폭격을 받은 마을에서 아이 한 명이 울면서 달리는 사진을 찍었다. 보도사진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중요한 점은 사진을 찍은 다음이다. 그는 곧바로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병원에 데려갔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반대 사례로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가뭄을 사진에 담았다. 아이가 힘겹게 식량 배급소까지 걸어가는 사진이다. 커다란 독수리가 아이를 먹잇감으로 삼아 노려봤다.

사진은 영국 가디언에 실렸다. 그는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아이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다. 카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 달 뒤에 자살했다. 나는 생각했다. 기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남편 혹은 아내를 잃은 사람들, 아빠와 엄마를 잃어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된 어린아이들, 반대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기자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아픔을 기사로 제대로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인간적인 기자 모습이다. 아니, 기자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69쪽)

세 번째로 ‘충성서약’을 멀리하라고 했다. 저자는 뉴욕타임스의 제프 슈맬츠 기자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1980년대에 활동했다. 성 소수자를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했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이랬다. 동성애자 권익보호단체인 ‘액트 업’의 리더가 에이즈로 사망했다. 슈맬츠도 에이즈에 걸린 상태였다. 그는 장례식장에 갔다. 동성애자 단체가 모인 곳이었다. TV 기자가 어느 자격으로 왔는지 따져 물었다. 사람들이 몰렸다.

슈맬츠는 자신은 신문기자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신문기자가 치러야 할 ‘시험’을 어렵게나마 통과한 셈이다. 에이즈 권익보호운동가 시험에 보기 좋게 낙제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취재원과의 관계다. 기자는 취재원을 이용하고 뒤돌아선다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뜨끔했다. 학생기자로서 지금까지 취재원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봤다.

필요한 말만 듣고 떠나버리지는 않았는지. 뭐라도 된 듯 따져 묻지는 않았는지. 고정관념을 갖고 마주하지는 않았는지. 말을 마음이 아닌 녹음기로만 듣지는 않았는지. 취재원 앞에 섰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마이크 세이거 사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이다. 그는 취재를 위해 취재원과 수 주일 동안 함께 한다. 그렇게 신뢰와 친근감을 얻는다. 인터뷰할 때는 상대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한다. 그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저자는 말한다. “연민과 감정이입에 풍부한 인간적 품성을 유지하는 기자상이야말로 젊은 언론인 지망생인 당신이 간직해야 할 모습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기자가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냉정을 ‘냉혈한’이나 ‘비인간적임’으로 착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취재원을 만났다. 그들은 기자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에게 편견을 주지 않았을지 걱정됐다. 기자가 싫다던 친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실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방법도 자세히 다룬다.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취재의 중요성. 또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기자를 준비하는 방법까지. 그가 오랜 기간 고민한 흔적을 전한다.

“닳고 닳아 뻥 뚫린 구두, 여자들의 경우 다 닳아버린 힐 구두,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니면서 묻은 신발 위의 진흙이나 먼지……그것이야말로 그 기자가 현장에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상징적 징표가 아닐 수 없다. ‘닳은 구두’야말로 우리가 기자임을 보여주는 당당한 증거물이다.” (127쪽)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날이 떠올랐다. 전공 수업 <기사작성기초>를 수강하면서다. 교수님은 기획기사를 작성하라고 했다. 생애 처음으로 인터뷰어가 됐다.

누구를 인터뷰할지, 시작은 어떻게 할지,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등 생각할 점이 많았다. 설렜다. 긴장도 됐다. 인터뷰한 내용을 기사로 쓸 때는 이렇게 느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다니! 1년이 지났다.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설렘을 또 한 번 느꼈다.

여행이 끝나면 아쉽다. 하지만 곳곳을 다 둘러봤으면 후회는 없다. 오감에 새겨진 기억은 미소로 변한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이 책은 나에게 여행 같았다. 생생한 묘사와 자세한 설명 때문이다. 마음에 담았다. 언제든 꺼내서 기억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의미를 하나씩 곱씹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겠다.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다. 신문기자이건 방송 프로듀서이건 간에 저널리스트들이 맡는 일은 항상 낯선 것이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다. 예전에 알던 것, 익숙한 것과 작별을 해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영원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사회주의를 완성시키려면 영구혁명을 해야 한다는 노선을 견지했던 러시아 혁명가 말이다. 혁명이란 항상 그 무엇을 겨냥한 총체적인 뒤집기 작업인데, 저널리스트는 무엇을 뒤집어야 할까? 고여 있는 상태, 익숙한 그 무엇을 왕창 뒤집어야 하는 것이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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