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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어제 그리고 오늘 ① 외숙모가 인연을 끊었다

기사승인 2021.06.27  20: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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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고성이 멈췄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외숙모와 말다툼을 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계집애가 뭔 말 하는지도 모르겠어.”

외숙모 부부에게는 아이가 2명 있었다. 한국말이 서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며 어머니는 못마땅해했다. 또 시누이를 어려워해야 하는데 위아래가 없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어머니는 화풀이하는 내내 손을 떨었다.

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외삼촌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면서 명절에 오지 않았다. 외숙모는 그때부터 기자의 가족과 연을 끊었다. 결혼한 지 8년이 되던 해였다.

외숙모는 베트남 출신으로 외삼촌과 결혼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외숙모를 친딸처럼 여겼다. 조카의 동화책과 옷을 살뜰히 챙겼다. 어머니는 결혼 시기를 놓친 외삼촌이 항상 맘에 걸렸고, 그만큼 부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외숙모도 신혼 때는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다.

무엇이 그들을 갈라놓았을까. 외삼촌은 말이 안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말이 통하지 않아서?

취재팀은 대학을 다니면서 외국인 유학생을 자주 만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차별과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응웬 튀린 씨는 2017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 왔다. 그는 전공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마다 속상하다. 팀을 짜는데 학교 커뮤니티에는 ‘한국인만 구한다’는 내용만 올라온다. 그는 “유학생은 열심히 안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택시에서도 불쾌한 일을 경험했다. 베트남인임을 알고는 기사가 한국과 베트남의 왜곡된 역사만 말했다. 반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늘어나는 중이다. 시행이 잘 되는지 궁금했다. “안산으로 가보세요.” 명지대 대학원 박사과정의 땀당 씨(36)가 말했다. 안산은 다양한 국가의 이주민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잘 지낼까.

▲ 경기 안산시 다문화 어울림공원의 표지판

취재팀은 경기 안산시로 갔다. 4월 24일부터 약 한 달간 단원구 원곡동을 열두 번 찾았다. 다문화 특구 거리를 처음 갔을 때는 낯설었다. 외국인이 가득했다. 간판은 대부분 외국어였다. 세계 각국을 표시한 표지판도 있었다. 한국인데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주말 오후가 되면 다문화 특구 거리는 식자재를 사거나 지인을 만나는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오전 11시. 다문화 어울림공원에 주민 몇 명이 보였다. 한국인처럼 보였다.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김필남 씨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답했다. 중국 동포였다. 1938년에 돈을 벌러 가자는 삼촌의 권유로 가족이 함께 중국 옌타이로 건너갔다. “중국에 있다가 여기에 왔는데, 20년 정도 됐죠.”

그때는 중국이 더 잘살았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곳의 외국인과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동남아 사람이 많은데 접촉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다.

그는 롯데시네마에서 미화원으로 9년 동안 일하다가 지난해 10월 그만뒀다. 요즘은 아침마다 공원에서 운동한다. “예전에 야간근무할 때는 여기 잘 안 오니까 모르지.” 외국인이 어떻게 사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잘 모른다고 했다.

교류가 적었지만 김 씨는 외국인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여름에는 옥상에 박스 깔아놓고 자고, 그런 거 보면 가슴 아프니까 일요일에 떠들어도 얘기를 안 하는 거야.”

자신이 사는 빌라 5층에 여행 가방이 7개씩 쌓여있다고 했다. 방 하나에 7명이 산다는 말이다. 주말이 되면 근로자들이 한집에 모여 시끄러워진다고 했다. “토요일 어떤 날은 기타치고 그래요. 그래도 우리는 같은 처지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거지.”

▲ 베트남 가게와 러시아 가게

베트남어 간판을 따라갔다. 낡은 간판 사이로 새 간판이 보였다. 러시아어로 쓰였다. 취재팀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했다. 러시아 식빵과 술, 절임 식품이 가득했다.

조에 씨는 “한국말 잘 몰라요. 외국 사람인데요”라고 했다. 대화는 아주 짧았다. “잘 모른다”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가게 안에 손님이 없었다. 어색함이 길어졌다. 들어간 지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나왔다.

3주 후에 다시 찾아갔다. 취재팀이 러시아어로 준비한 질문을 보여줬다. “혹시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에 씨는 알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냐는 물으면 손으로 ‘2’라고 표시하고 “2년”이라고 대답했다.

조에 씨는 2019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아들과 함께 지냈다. 지하철 한대앞역 근처에서 러시아 식당을 했다. 두 달 전, 원곡동에 러시아 식품 가게를 차렸다. 이날 러시아 가족도 방문했다. 조에 씨는 손님과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한국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어는 조금씩 배운다. 한국에서 오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한국어 강의를 듣는다. 안산시의 외국인센터 수업은 가지 않는다. 가게 시간과 맞지 않아서다.

그는 매일 가게에 나온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센터 수업은 요즘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조에 씨는 한국어가 서툴러 이런 사실을 모른다.

 

 

 

 

김수아‧김정현‧양지훈 기자 storyofseoul2017@gmail.com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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