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서숙자 씨(62)는 평소처럼 신사굿모닝마트에서 저녁 찬거리와 집 앞에 심을 고추 모종 한 봉지를 샀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마트 앞, 상신초등학교 입구 정류장에서 은평 10번 마을버스를 탔다. 5월 3일 오후 6시였다.

버스를 타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곳에서부터는 경사가 아주 심한 구간을 운행하오니 손잡이를 꼭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는 긴 오르막을 올랐다. 과속 방지턱을 두 번 지나 조금 경사가 완만해지나 했더니 다시 가팔라지기를 반복했다. 끝날만한데 끝나지 않는 오르막을 오르니 행운슈퍼 정류장이 나왔다. 서 씨는 여기서 내려 언덕 꼭대기의 집까지 오르막 40m를 더 걸었다.

은평 10번 버스가 없으면 어떨까. 무릎이 좋지 않아서 네댓 번은 쉬어 가며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은평 10번 말고는 언덕을 올라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서 씨는 봉산 중턱의 산새마을에 산다. 지대가 높아서 주민은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린다.

맞은편 골목에 사는 한정임 씨(86)는 1000m 거리의 복지관을 갈 때도, 복지관에서 집에 올 때도 은평 10번을 이용한다. “다리가 아프니까 마을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 동네는 마을버스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짐을 한가득 들고 오르막을 걸을지도 모른다. 삶의 활력이던 복지관에 가기가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은평 10번 마을버스의 운영이 불투명해서다.

▲ 산새마을 언덕

서울시마을버스운송조합은 지난 5월 서울 시내 마을버스 재정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6월 1일부터 마을버스 운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다행히 계획을 철회했지만 운행을 중단할 가능성은 아직 남았다. 마을버스 업체의 경영난 때문이다.

서울 시내 마을버스의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평균 27% 줄어들었다. 서울시가 코로나 19를 이유로 재정지원마저 축소했다. 이에 따라 업체는 운행을 줄이거나 기사에게 무급 휴가를 권유하며 버티는 중이다.

한 씨와 같은 고지대 마을 주민은 불편함을 넘어 위기를 느낀다. “이 동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 동네인데 저 밑에서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오겠나.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저 마을버스 하나다.”

주민 김영자 씨(82)는 “새절역에서 올 때도 그렇고 항상 많이 타고 다니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여기는 다 노인이라 걸음도 못 걸으시는 분이 많아서, 애로사항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버스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도 필수다. 서대문 07번 버스가 다니는 개미마을은 영화 ‘7번방의 선물’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개미마을부터 홍제역까지 운행하는 서대문 07번은 ‘오동나무’ 정류장부터 500m의 경사를 오른다. 개미마을 종점까지 다니는 대중교통으로 유일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서대문 07번의 운행 대수가 2대에서 1대로 줄면서 말그대로 단 한 대의 대중교통이 됐다.

▲ 개미마을 종점의 서대문 07번 버스

시 보조금을 받으려면 일정한 운행 횟수를 채워야 한다. 때로는 위험하게 운전하면서까지 ‘배차 간격 24분’을 꼭 맞추는 이유다. 오동나무앞 정류장에서 시작된 경사는 ‘버드나무가게’ 정류장을 지나면서 더 심해진다.

서대문 07번 버스를 2년째 운행 중인 홍성주 씨(64)는 “여기 사는 주민이 편리하게 다니려면 이 버스가 꼭 필요하다”며 “코로나 19로 인해 여러 회사에서 무급휴가가 많아지고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마을버스가 꼭 필요한 고지대는 학교 주변에도 있다. 종로구 평창동의 ‘깔딱고개’가 대표적이다. 종로 13번 버스 정류장 주변 빌라에 사는 강양임 씨(78)는 “워낙 경사가 심해서 할머니들이 지나다니면서 ‘깔딱깔딱’ 숨을 헐떡인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말했다.

상명대 학생들도 종로 13번과 서대문 08번 버스를 애용한다. 상명대 무용과 이가은 씨(20)는 서대문 08번 버스를 매일 탄다. 이 씨는 “경사가 너무 심한 길이라서 걸어 올라오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마을버스는 고지대 마을, 외지 마을, 아파트단지, 산업단지, 학교 중 하나에 해당하는 곳을 기점으로 한다. 서민과 가장 가까운 대중교통인 셈이다.

마을버스 위기는 주민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은평 10번 버스는 재정난으로 인해 4대에서 3대로 줄었다. 주말에는 겨우 1대가 다닌다. 가장 혼잡한 새절역 네거리에서 막히면 배차 간격이 30분까지 늘어난다.

마을버스 업체는 작년 10월부터 운행의 어려움을 알리는 현수막을 버스 앞에 붙였다. 2월부터는 서울시청 앞에서 업체 대표가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했다. 2001년 서울시마을버스운송조합 설립 후 처음으로 나선 단체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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