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염되었다!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수백 명이 계속 확진 판정을 받는 상황이지만 코로나 19에 걸렸다고 스스로 밝히는 이는 많지 않다. 확진 이후의 일을 세세하게 나누는 이는 더더욱. 감염자로서 삶은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에서 책장을 넘겼다.

부제는 ‘UN 인권위원의 코로나 확진일기’. 저자는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한국인 최초로 UN 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됐다. 책은 ‘성북구 13번 확진자’였던 경험을 담았다. 출장차 뉴욕에 갔다가 코로나 19에 걸렸다고 한다.

서 교수는 감염 경로를 추적하면서 중국인과 이민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고서 놀란다. 또 자신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모습을 보고 확진자의 사라진 인권을 경험했다. 그는 감시카메라만 많고 고립된 병동에서 생활하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닫게 됐다”고 회고한다.

▲ 서창록 교수(출처=고려대 국제대학원 홈페이지)

서 교수는 공동체 방역을 위해 국가의 간섭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가장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점도. 강의에서 내내 인권을 강조하며 미국의 봉쇄정책을 비판했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며 반성한다.

“다시,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원점에서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인권이다. 자유는 인권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이 인권을 위한 길은 아닐 터이다.” (39쪽)

하지만 국내에서는 확진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서 교수는 우려한다. 한 가지 예시가 ‘자가격리자 손목밴드 의무화’ 방침이다. 홍콩에서 유사한 제도를 시행했을 때 대다수 나라가 비판했다. 국내 조사에서 응답자 중 70% 이상이 전자 팔찌 착용에 찬성했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자가격리 위반자에 한해 손목 밴드를 채우는 방향으로 수정됐지만 서 교수는 “결국 감시가 자유를 이겼다”며 “정책과 제도가 앞으로 국민의 자유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간과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 홍콩 자가격리자가 착용하는 전자 손목밴드(출처=연합뉴스)

비슷한 맥락에서 서 교수는 확진자의 개인정보 수집 절차가 정당하지 않고 수많은 감시카메라에 둘러싸인 채로 확진자의 사생활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 교수는 이동동선 역학조사에 성실히 참여했고 핸드폰과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추적당했다. 이로는 부족했는지 개인 사진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많은 개인정보가 필요한지 의심하면서도 서 교수는 치료과정에 불이익이 있을까 정보를 제공했다.

“소위 인권 전문가라는 사람도 이런 공포감이 먼저 드는데, 일반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는 절차는 아무 의미 없는 요식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69쪽)

또 24시간 감시와 확성기 소리와 함께했던 음압병실 생활을 언급하며 어린이집 감시카메라 의무화 등 방침에서 “우리는 이 과정에서 돌보미, 노동자, 어린이집 교사의 사생활 보호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사회에 만연한 차별, 낙인, 배제에 관련한 내용이었다. 내 경험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퍼지던 초기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공항에서 서 교수는 중국인으로 보일까 한국인 여권을 은근슬쩍 잘 보이게 들고 다녔다고 한다. 동유럽 이민자가 접촉사고를 내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그와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동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니까 이렇게 막무가내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 교수가 한국으로 향하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나도 벨기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동양인인 내 근처에 다른 이용객은 잘 오려고 하지 않다. 밥을 먹으려고 잠깐 마스크를 벗는 순간에도 눈치를 봤다. 당시 나도 내가 어떤 ‘탓 돌리기’를 하는 줄 모른 채 중국인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차별 섞인 시선에 군중 속 외로움을 경험했음에도 동유럽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것 같은 이들이 곁을 지나갈 때 움찔 놀랐던 것도 기억한다. 이민자 중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다는 정보 때문에. 나는 차별을 당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차별했다.

이와 관련해 서 교수는 “미국에서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전히 아시안과 히스패닉이 있지만 브라질에는 모두 브라질 사람만 있다”며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재생산된다는 모순을 짚는다. 또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각 인종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한다.
 
또 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인, 신천지, 보수교회, 성소수자 등이 낙인의 대상이 되었다”며 “코로나 환자를 일방적 가해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는다. 특정인을 대상화하고 그들을 나와 분리해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불필요한 오해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문제의 본질을 가리지 않고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

▲ 책 표지(출처=알라딘)

책은 코로나 19 확진자에 대한 차별 등 인권문제뿐 아니라 공공의대, 김영란법, 대학 등록금 환불 논란, 가짜뉴스 인포데믹 위기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시의성 있는 문제 다수를 코로나 19라는 한 가지 몸체와 연결해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인 수치나 연구 결과보다 개인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수는 있다. 코로나 19 특수성을 고려해 빠르게 국민을 통제해야 한다면서도 전자 팔찌나 개인정보 수집에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개인 자유와 국가 간섭의 적절한 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피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다만 인권에 대한 생각에는 동의한다. 타인의 인권 없이 나의 인권은 없다는 점, 제아무리 코로나 19 해결이 급해도 인권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강압이 인권을 압도하지 않고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

책을 다 읽으니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감염되었다! 나도 모르게 코로나 19 확진자를 타인으로, 코로나 19를 타인의 문제로만 치부했던 건 아니었는지. 잠시 간접경험을 통해서나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확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정부 역할이 강화되는 중이기에 <나는 감염되었다>는 더 추천할만한 책이다. 시급성과 편리성에 밀렸던 인권문제를 다시 곰곰이 고민하게 만든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경직되기 규정하고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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