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대로21길에는 조선일보 본사, 조선일보 미술관, TV 조선이 있다. ‘조선일보 존’이라고 불려도 무방한 곳이다.

핸드폰을 귀에 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건물 뒤 외진 골목길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활기가 넘치는 그 공간에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 차림의 남성이 다가왔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였다.

내 몫의 음료를 먼저 시켜놨다고 하니 “나 왔을 때 같이 시키지! (사원증 할인으로) 더 싸게 살 수 있는데.” 그의 말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오늘 만남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문화부 선임기자다. 입사한 지 올해로 30년 차. 그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썼다. <천국의 국경을 넘어>, <Our Asia>를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한 길만 묵묵하게 팠던 장인 이야기를 담은 <박종인이 만난 외길 인생>을 연재했다. 여행을 담당한 1995년 이후에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풍경과 사람에 대한 스토리를 주로 다뤘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 기자라는 일이 ‘목숨을 걸고’ 할만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만으로는 주제가 가볍다고 느껴 거기에 사람을 넣고 역사를 넣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뭔가 부족했다. 고민 끝에 그는 역사 분야로의 전향을 결심했다. 그때가 2015년. <땅의 역사> 시리즈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는 하는 일이 다 재밌고 불만을 가질 틈이 없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람을 이끌고,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세상은 분명 잘못되어 있고 그 원인은 역사에 근원을 둔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사 위에 사람이 있고 풍경이 있는 것이니까요.”

▲ 박종인 기자(출처=조선일보)

<땅의 역사>는 260회 이상 연재됐다. 역사 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 교과서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그는 이미 정설이라고 여겨지는 점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파헤치는 글을 쓴다.

“역사 저널리즘은 학자가 공부하는 역사랑 달라야 하고 실제로도 많이 다르죠. 기자는 ‘이게 틀렸나 보자’ 작심을 하고 보는 것이니까요.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은 없나, 그래서 일반 대중이 역사에 관해 틀리게 알고 있진 않나. 그런 일이 있다면 언론이 정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독자 반응은 어떨까. SNS에 ‘박종인 땅의 역사’, ‘땅의 역사’를 검색하면 일부를 인용해 자기 생각을 밝힌 게시글부터 SNS 친구에게 추천하는 글까지 형식과 내용이 다양한다.

어느 인터넷 카페 이용자는 <땅의 역사>를 읽고 ‘저자 박종인, 직업 기자로서의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해석과 유추는 본받을만 했다. 그런 과정속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과 유추 방법도 매우 흥미로웠다’는 평을 남겼다.

그의 기사를 읽다 보면 낯설고 불편할 때가 있다. 그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독자가 불편해하는 점을 오히려 반긴다.

불편함은 읽는 이의 의식을 깨어 있게 만들고 잘못 배운 역사에 대해 한 번이라도 돌이켜 생각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는지를 계속해서 감시하는 저널리즘의 사명을 그는 이렇게 역사라는 분야에서 다하는 셈이다.

그는 <땅의 역사>로 지난해 제10회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이렇게 평했다. “이 시대의 사관.” 다소 무겁게도 느껴지는 타이틀에 부담을 느낄 법도 한데, 그는 외부 시선보다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부담감이 더 크다고 했다.

“틀린 것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일인데 정작 내가 틀리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팩트 파인딩’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전국 곳곳으로 현장 답사를 직접 간다. 논문은 기본 50~60개, 이외의 역사적 자료는 셀수 없이 많이 들여다본다. 1주일에 감당하기에는 실로 벅차다. 그래도 즐거워 보였다.

“팩트는 신성합니다. 팩트 앞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숙이게 돼요. 내가 내세우는 주장이 팩트로 뒷받침할 수 있는 진실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죠. 검증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팩트가 다 모이면 사실 아무 부담이 없어요.”

일에 대한 그의 집념은 대단했다. 가족여행을 하다가도 기사 주제가 될 만한 내용을 찾으면 바로 ‘답사 모드’가 된다고 그의 아내 이주연 씨는 말한다. 기사를 쓰는 동안은 글에 전념해 밥을 먹는 일조차 잊을 정도라고 한다.

남들이 보기엔 워커홀릭 같고 ‘무슨 재미로 사나’ 싶지만 취미가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니 천생 기자이지 싶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차츰 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입사 이전에는 전혀 활동적이지 않았지만 우연히 여행 전문 기자가 되니 여행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진도 그랬다. ‘사진기사의 생각이 다르고, 내 생각이 다르니 내가 직접 찍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찍다 보니 재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이전보다 넓어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라는 말에 십분 동의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일이 재미있고, 그러다 보니 더 욕심을 내서 일에 몰두하게 된다고 말한다. 매일 가슴에 사표 하나씩 품고 출근한다는 직장인의 삶과는 다소 달라 보였다.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하자 손사래를 친다. 원동력이니 사명감이니 근사한 단어를 늘어놓아 봐도 그런 거 없단다.

“배운 도둑질이 그거에요. 답사하고 자료 찾고 하는 일은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합니다. 팩트를 보면 단순해요. 포장된 말이 필요가 없죠.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하는 일을 하면서 남한테 칭찬도 받고 돈도 벌고. 이게 재밌어서 관둘 수가 없는 거에요.”

지나친 추켜세움은 슬쩍 밀어내면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고스란히 묻어났다. 진솔한 모습에 정이 간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덕담이 된 시대에 자진해서 일을 많이 하고, 즐겨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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