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전 민주노동당 대표‧ 현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

박용진 의원이 설날, 추석 같은 때 인사를 하러 온다. 올해는 전태일다리에서 만났는데 그때 대선 출마를 머릿속에 그렸던 것 같다. 그런 뜻을 비쳐서 “전태일 정신을 잊지 않는 박용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박 의원이 오래전부터 노동운동을 함께 배웠고, 전태일 정신을 기리는 여러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항상 노동자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을 새기고 배워 나가기를 바란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다.

박 의원은 헌신과 열정의 화신이다. 민주노동당 건설 운동을 하면서 지방을 같이 돌았다. 그때 활동비도 줄 수 없었다. 활동가 본인이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박 의원도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해결하면서 운동에 뛰어들었다. 새벽이나 밤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낮에는 조직 활동을 했다.

민주당에서 제일 젊은 후보지만 정치적 경륜은 민주당에서 가장 길다. 1997년부터 정치활동을 쭉 해온 사람이 아마 없을 거다. 그동안 주저앉지 않고, 끊임없이 지역 활동을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박용진이 뚜벅뚜벅 걷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많이 하는데 권영길이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 때로는 밤 10시까지, 때로는 새벽부터 그걸 몇 년 내내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거다. 이삭 줍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가지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노동자 일하는 현장에 살고 전국의 지역을 밤 늦게까지 (같이) 돌면서 자기가 마음속에 느끼는 바가 굉장히 많았을 거다.

▲ 권영길 전 대표

▣ 이수호(고2 담임‧전태일재단 이사장)

굉장히 활달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학생회 부회장도 했는데 열심히 앞장서서 일하고 학생 의견도 열심히 듣는 스타일이었다. 그냥 적당히 자리나 지키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회가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알았던 것 같다. 학생 의견을 열심히 듣고, 학생 요구를 모아서 학교에 건의도 했다.

순수한 열정이 큰 힘이다. 고등학교 때도 보면 굉장히 순수했다. 잔머리를 돌리지 않고 잘 웃고 분위기 메이커다.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고…. 그러면서 할 말은 하는 거다. 가만히 있어서 안 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 일 자체만 보고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판단을 하는 것 같다.

고2 담임할 때, 용진이랑 반장을 하던 친구하고 몇 명이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왔다. 깜짝 놀랐다. 애들이 오니까. 면회실 분위기가 살벌하지 않나. 철창도 있고. 근데 면회실 들어오면서 넙죽 큰절을 하더라. 교도관도 놀랐다. 난 황당하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될 고3 때인데 여기까지 와서 괜히 학생들 마음에 어려움을 주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도 되고 울컥했다.

내가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일 때 감옥에 다시 들어갔다. 죄목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었다. 학생, 노동자가 데모하고 경찰은 최루탄 쏘고 맞고 이러면서 다치지 않나. 그때 다친 경찰이 많았는데 책임을 당시 집행위원장이던 나한테 물었다.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폭력 교사를 자처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래서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판에서 증인이 있어야 했다. 용진이가 대학 1학년쯤, 증인으로 나왔다. “우리 선생님은 저렇게 죄수복을 입고 있지만, 죄를 지을 분도 아니고 특히 폭력을 행사하거나 교사하거나 할 분이 아니다”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도 잊고 있었던 일화를 얘기했다. 학생이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내가 아주 호되게 야단을 쳤다는 거예요. “다 좋은데 왜 총을 가지고 장난을 하느냐. 이런 폭력을 흉내 내는 게 너희들이 할 짓이냐”면서 흥분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하면서 “폭력을 혐오하는 선생님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이렇게 증언해서 나도 놀랐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안 좋아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이게 올바른 일이다, 의로운 일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것. 의로운 일을 저해하는 사회에 대해 저항하는 성격이다.

이른바 패거리, 어디 줄 서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 자체에 가치를 두고 올곧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기준을 두고 행동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체질화된 거다.

▲ 이수호 이사장

▣ 최순영(전 민주노동당 의원·경기도 교육청 전 시민감사관‧현 경기여성연대 대표)

민주노동당 때 아주 열심히 하는 당원이었다. 청년으로서 중요한 활동을 많이 했다. 발로 뛰면서 지역 활동도 열심히 했다. 박용진 의원이 (사립 유치원 비리) 자료요청을 해서 잘됐다면서 내가 찾아갔다. 박 의원 정도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신이 있다. 로비를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열심히 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유치원 3법을 위해 굳건히 견뎌줘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가 아무리 감사를 해도 국회의원이 받아주지 않으면 어려웠다. 압력도 있었을 텐데 잘 견뎌줘서 너무나도 고맙다.

그날 토론회도 굉장했다. 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발표를 못할 정도…. 내가 아주 작심하고 했다. 왜냐면 일단 비리가 발표돼야 언론이 받을 수 있지 않나. 사립유치원 원장이 다 와서 막았다. 그 과정이 말도 못한다. 우산을 갖다가 우리 PPT를 가리고 난리쳐도 발표 했다. 언론에서 너무 기가 막히니까 그날 다 받았다. 그런 것을 다 박 의원이랑 했다.

▣ 우석훈 (싱크탱크 ‘온국민행복정치연구소’ 소장·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박용진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정치인은 기본 메시지를 보좌진이 만들면 그 다음에 검토한다. 박용진은 자기가 할 얘기나 자기가 발표할 글은 직접 쓴다. 그럼 그걸 놓고 보좌진이 검토한다.

제가 본 정치인 중에서는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보통은 국회의원이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데, 여기서는 보좌진이나 그를 도와주는 전문가가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랑 아주 다른 거나, 길게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이 걸러지고 좀 더 의미가 있는 내용이 남는다. 첫 발제문을 박용진이 직접 쓰니까, 다른 데라면 며칠 걸릴 논의가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여러 사람 눈을 거치면서 현실성이 높아지고, 점점 더 그런 스타일로 진화한다고 본다.

제 스타일과 비교해보면 저는 뒤에서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 안 만나고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박용진은 정반대다. 고등학교 때도 나서서 ‘반장 하겠다, 내가 그거 하고 싶다’ 그런 스타일이었다고 하더라. 문제가 있으면 저는 지켜보면서 해법을 찾거나 대안을 찾는 스타일이지만 박용진은 주저하지 않고 방향을 정해서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하나하나 해결한 리스트가 커지면 더 큰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는데 입 다물고 있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더라. 박용진은 언제나 큰 문제 앞에 서 있는 스타일로 살아갈 거다. 지금까지 그랬다.

박용진의 차별점은 정체성과 확장성이다. 민주당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정치적 출발이 그랬고, 삼성 등 대기업 문제나 교육 문제 등 부당한 것이 있을 때 대처하는 입장이 명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그마에 갇히지 않고 전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영에 갇히지 않는 확장성이 동시에 높다. 입장이 명확하면서 확장성이 높은 것은 정치인이 쉽게 갖기 어려운 덕목이다.

▲ 우석훈 교수(우석훈 교수 제공)

▣ 박상필(수석보좌관)

국회의원실은 다 힘들다. 그중에 우리가 좀 더 힘든 의원실인 것 같다. 박용진 의원이 아이디어가 많고 새로운 기획을 많이 말하기 때문이다. 또 뭔가를 하면 꼭 끝을 보고,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해서 힘들다.

박 의원은 전혀 다른 정치를 하더라. 나도 운동권을 경험했고 민노당 활동도 했고 진보신당도 했다. 하지만 소위 진보 정치인이 하는 운동권식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려는 그런 정치를 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 10년 같이 일하면 대한민국을 위해서 꽤 근사한 정치인이 될 것 같았다.

▣ 서승목(전 정책특보‧현 서울시 강북구의원)

박용진 의원은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다. 보좌관이 가져간 결과물이 만족스럽더라도 1%라도 좀 더 나아진 걸 원한다. 본인도 거기에 대한 의견을 내고, 저희가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에서 지금도 가장 힘든 보좌관이라고 들었다. 유치원 3법 때도 의원실에서 힘들어했다. 현대차 리콜, 삼성바이오로직스 이슈 때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보좌관이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해서 힘들다.

박 의원에게 많이 배웠다. 처음 (강북구) 의회에 들어왔을 때 내부 단체가 예산 문제로 시끄러웠었다. 보통 의원은 표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한발 물러선다. (저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 중 한 명인데, 그 이유가 박 의원의 말 때문이다. 박 의원이 “우리가 주민을 바라보면서 활동하는 거지 몇몇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선거에서 표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주민을 보면서 일해라, 국민을 바라보면서”라고 말했다.

몇몇 분은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신다. 박 의원 다음다음에는 서 의원이 국회의원 출마하는 거 아니냐고…. 저는 기분은 좋다. 근데 저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저는 국회의원을 할 자신이 없다고. 박 의원처럼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박 의원은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게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거라는 책임감을 되게 많이 느낀다. 20대 국회 때도 오전 5시에 집을 나섰다. 5시 30분~6시쯤 국회에 들어갔다. 그때 들어가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11시, 12시쯤 퇴근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거다. 정책 공부도 많이 한다.

▲ 서승목 의원(서승목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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