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8월 19일 대구 중구의 서문시장에 있었다. ‘미안합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제가 정치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정부의 무능을 막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는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났다.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리어카에 타겠다고 응석을 부리다가 바퀴에 오른발이 깔렸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가난에 익숙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박한지 안다.

강우준 씨는 제주제일고에서 원 전 지사를 처음 만났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 친구가 (성격이) 밝아서 친구들도 어려운 줄 몰랐어요.”

▲ 원 전 지사의 어린 시절

그는 전국학력고사에서 수석을 하고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영화 <빨간 마후라>를 보고 한때는 공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법대를 선택하면서 법사회학자를 꿈꿨다.

꽃길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였다. 시위하는 학생을 전경이 쫓아와서 최루탄을 쐈다. 눈물이 쏟아졌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친 친구들이 보였다. 도서관을 나와 시위대에 합류했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학교에서 유기정학 6개월을 당했다. 교수들은 제주도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 설득했다. 원 전 지사가 서울 구로공단에서 야학 활동을 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만히 보다가 제주도로 내려갔다.

원 전 지사는 인천의 금속공장에 취직해 노동자로 살았다. 소록도 환자촌에 가서 봉사활동도 했다. 제주도의 자랑이던 그가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강윤형 씨는 그에게 버팀목이었다. 서울대 제주향우회에서 만났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원 전 지사의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다. 레이디 경향 인터뷰에서 강 씨는 “대한민국 1% 학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접는 모습에 순수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 고등학교 졸업 사진

원 전 지사는 법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사법고시를 뒤늦게 준비한 이유다. 2년의 노력 끝에 1992년, 제34회 사법고시에서 수석을 했다. 그리고 서울대를 8년 만에 졸업했다.

검사로 3년 반을 근무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친구들은 뒤통수를 때리며 말렸지만 원 전 지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잇따랐다. 운동권 출신이 많은 민주당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택했다. 보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민의힘 정병국 인재영입위원장은 “전국 수석이 우리 당에 들어와 언론도 놀랐어요. 주목을 받았죠”라고 했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의 정치자금 논란이 불거졌다. 차로 돈을 실어 날랐다고 해 ‘차떼기 정당’으로 불렸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강 근처에 천막을 쳤다. 12월이었다.

낮에는 선거운동을 하고 밤 9시에 모였다. 14명으로 시작했는데 3명이 남았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남원정 소장파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 전 지사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 양천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내리 당선됐다. 그는 국회활동 가계부를 매달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의원 월급, 주차비, 청소 수수료까지 적었다.

당에서는 내부고발자였다. 16대 원내총무 경선과정에서 후보 2명이 의원에게 현금을 제공하고 골프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 현역의원 사이의 돈거래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일은 처음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먼저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또 ‘돌밥회’에 가입해 더치페이 문화에 앞장섰다. 전 재산 환원 운동에 참여하고 1가구 1주택 운동에 서명했다.

정치학자들은 2005년에 ‘2020년쯤 이끌 차세대 지도자’로 원 전 지사를 뽑았다. 세계 경제포럼이 선정한 영 글로벌 리더와 차세대 정치리더 1위를 했다.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고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위를 했다.

▲ 미래를 위한 제주포럼에서의 모습(김상협 전 카이스트교수 제공)

원 전 지사는 2014년부터 제주도 지사를 지냈다. 두 번 모두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전국지역신문협회가 주는 행정대상을 광역자치단체장 중에서 유일하게 받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2017년에 그의 공약 완료도를 80%로 평가했다.

그는 도지사로서 가장 잘한 정책으로 도정 탕평과 탄소중립을 꼽았다. 자신부터 실천했다. 관사를 도서관으로 개방했다. 제주개발공사 직원을 채용할 때는 인사청탁이 들어온 응시자를 모두 탈락시켰다.

또 검은색의 고급 승용차가 아니라 흰색 전기차를 타고 출근했다. 제주도를 탄소 없는 섬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김상협 제주연구원장은 제주도의 기후환경관리를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 주지사가 원 전 지사에게 연락해 기후 동맹을 맺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조성호 비서는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제발 자리에 계셨으면 좋겠다. 도민분들은 좋아하실 것 같지만 비서실 직원들은 일이 늘어난다”고 했다.

▲ 원 전 지사는 7월 25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재작년에 아이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졌다. 왼쪽 다리뼈에 금이 가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불편한 몸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8회 완주했다. 달리기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고 했다. 원 전 지사는 “60세 이전에 대권에 도전한다”고 2014년 선언했다.

“나도 한때 갈 곳을 잃은 패자였고, 가장 높은 곳에서 곤두박질쳐 추락해 본 경험이 있다.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힘이 있으면 일어설 힘은 생긴다.” 자서전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사람으로서 존엄을 인정받는 나라를 원한다.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는 대선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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