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위한 2차 예비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10월 8일 밝혔다. 스토리오브서울은 정치인 최재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의 취재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휴머니스트. 원칙주의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지인들이 하는 얘기다. 최 전 원장은 판사 생활을 31년 하면서 원칙주의자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원장으로 발탁하는 계기가 됐다.

최 전 원장의 최대 강점은 높은 도덕성과 청렴결백한 이미지다. ‘미담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줄곧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동갑내기 친구 강명훈 변호사와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최 전 원장은 소아마비를 앓던 강 변호사를 2년간 업고 등하교했다. 두 사람이 1981년 사법고시에 나란히 합격하면서 화제가 됐다.

최 전 원장 부부는 두 아들을 입양했다. 갓 태어난 작은 아들 진호를 2000년에, 입양했고, 11살이던 큰아들 영진이를 2006년 입양했다. 오랜 산고 끝에 낳은 두 딸을 키우던 중이었다.

최 전 원장은 입양을 준비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2011년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두 딸을 키울 때랑 마찬가지죠. 보람도 있고 때론 화도 나는 것. 입양했다고 다를 게 뭐 있나요.”

조부(최병규 선생)는 독립운동가였다. 부친(최영섭)은 해사 3기 출신으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으로 불린다. 집안의 모든 남성이 군 복무를 했다. 최 전 원장이 어릴 적부터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생활을 했던 이유다.

▲ 대전현충원에서 부친 영결식 뒤에 찍은 사진. 왼쪽부터 사남 최재완, 삼남 최재민, 오창학 목사, 차남 최재형, 장남 최재신 씨(오창학 목사 제공)

그는 2011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윤필용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1973년,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이유로 참모와 함께 처벌 받았다. 최 전 원장은 부당한 역사를 판결로 바로 잡았다.

소신 행보는 감사원장 재임 중에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감사로 확인했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는 6월 28일 감사원장에서 물러났다.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 선언(7월 7일), 국민의힘 입당(7월 15일) 등 속전속결 행보를 보였다. 초반 지지율은 높았다. 하지만 높은 도덕성과 원칙주의자의 면모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 최재형 전 감사원장(출처=페이스북)

지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캠프를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1차 예비 경선이 막을 오르던 9월 14일이었다. “저에게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많은 분께 실망을 안겨드렸다.”

이후 ‘소신 최재형’이 돌아왔다. 상속세를 폐지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표심과 직결돼 국민의힘에서 쉽게 건들지 못했다. 그런데도 최 전 원장은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캠프 해체 이후에도 최 전 원장을 수행한 백지원 대변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껏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좌우명은 ‘의연’이다. 의지가 굳세어서 끄떡없다는 뜻이다. 선친이 짓고, 본인이 물려받은 가훈이기도 하다.

그는 10월 8일 국민의힘 2차 예비 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 전 원장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정치 생활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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