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 최종경선에서 탈락했다. 이 전 대표는 상황이 힘들어도 길게 보고 정의를 추구하는 가치를 계속해서 지켜나가겠다고 10월 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말했다. 스토리오브서울은 정치인 이낙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의 취재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이테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리 시절, 디테일을 강조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그는 현안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지시를 내린다.

‘이낙연 필연캠프’의 임미연 동물복지본부장은 “이 전 대표가 깐깐하고 굉장히 완벽하다.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메모를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메모를 많이 한다. 기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지 뒷주머니에 수첩을 넣어 다니며 모든 걸 적는다. 기자 시절에는 빠짐없이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날려 쓰기도 했다. 때로는 내용을 못 알아볼 정도여서 옆자리 선배의 메모를 보면서 기사를 썼다.

▲ 정운현 전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이 전 대표의 수첩(출처=뉴스1)

세심하게 현안을 파악하는 성향은 재난 현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국무총리였던 2019년 4월 5일, 강원 고성군의 산불 피해 지역을 찾았다.

거기서 처음 만난 농민에게 “볍씨가 다 타버렸죠?” “농기구가 타버렸죠? 저희가 꼭 다시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옷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노인에게는 “혈압약 못 가지고 오셨죠?”라고 말을 건넸다.

이 전 대표는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이재민의 불편과 불안을 실제로 덜어드려야 한다고 얘기했다. 눈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눈앞이 보이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은 힘들었다. 전남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1952년 태어났다. 4남 3녀에 조모까지 식구 10명이 방 두 칸짜리 초가집에서 살았다.

학교는 광주북중과 광주제일고를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같은 반인 조순용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비서관의 집에서 3개월 정도 하숙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성실하고 교사 말을 잘 들었다. 국어 과목을 좋아했기에 이 전 대표는 정치인이 아니었으면 국어 교사를 하고 싶었다. 특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 이 전 대표는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이 전 대표는 서울대 법대에 70학번으로 입학했다.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낼 곳이 없어서 가정교사를 하던 집, 선배의 하숙집, 친구 자취방, 독서실을 전전했다.

억울한 사람을 돕겠다는 변호사 꿈은 지독한 가난으로 접었다. 그리고 1979년부터 동아일보에서 21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주로 정치부와 국제부에서 근무했다.

민주당을 담당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알게 되어 친분을 쌓았고 결국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 전 대표는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을 단연 김 전 대통령으로 꼽는다.

이 전 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19대까지 같은 지역구를 지켰다. 작년 21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국회 복지위원회에서 국내 최초로 고독사 문제를 이슈화했다. 이 전 대표는 초선 때부터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맡았다. 이후로도 다섯 차례에 걸쳐 대변인이 됐다. 깔끔한 문장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호평을 받았다.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 동아일보 기자 시절(출처=필연캠프 페이스북)

그는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남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역점을 뒀던 일자리 정책에서 제조업 종사자 10만 명을 회복하는 등 성과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 전 대표는 국무총리가 됐다.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이 생겼다.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의 공격을 노련하게 받아넘기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의 박광온 의원은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국정 전반에 대해 훈련을 받았고 국제 감각과 외교역량을 키웠다고 했다.

작년 8월에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반년 동안 법안 422건을 처리했다.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법안으로는 4·3특별법을 꼽았다. 유족과 희생자에게 배상 또는 보상을 하려고 1810억 원을 정부예산에 반영토록 했다.

▲ 이 전 대표의 모습(출처=필연캠프 페이스북)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 전 대표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으로 모든 국민이 불안해하므로 국가가 훨씬 촘촘하게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의미.

주요 공약은 ‘신복지’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 걸맞게 국민의 삶을 보장하자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비전이다. 2015년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은행이 국제사회에 제안한 ‘보편적 사회 보호’ 구상을 한국에 맞게 구체화했다.

이 전 대표는 4계절에서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지긋지긋한 더위가 어느 순간에 사라져서 좋다고 했다. 가을 기온이 생활하기에 적절하지만 빨리 끝난다. 그 아슬아슬함이 있어서 가을이 더 소중하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을 위한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들고 국가가 모든 국민의 따뜻하고 든든한 집이 되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저에게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전국의 연설장을 찾아 응원을 보내주신 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커피값을 아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후원해주신 모든 분의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