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추진력이 좋다, 소신 있고 올곧다. 지인이 공통으로 꼽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장점이다. 국회의원 다섯 번. 경남도지사 두 번, 한나라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대표. 그의 장점은 오랜 정치 생활의 원동력이 됐다.

홍 의원은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이사를 자주 다녔다. 초등학교만 5번 옮겼다. 도시에서 공부하려고 부모를 설득해 대구 영남중에 진학했다.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날에는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중고교 동창인 정한태 씨는 홍 의원이 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거의 안 하는 척했다. 장난을 좋아하고 유머가 있어서 친구에게 인기가 많았다. 집에 돌아가면 공부를 새벽까지 하는 것 같더라.”

▲ 홍 의원의 어린 시절(출처=중앙일보)

학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아버지가 비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자 억울한 사람을 돕는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뒤늦게 문과 공부를 시작해 1972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다.

사법시험 도전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5번 떨어지자 취직을 준비했다. 그러나 법조인이 되겠다는 열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6번의 도전 끝에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홍 의원은 추진력과 소신이 돋보이는 검사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가담한 비리, 사기 사건을 적발해 구속했다. 부당한 간섭에도 수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이던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은‘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정계와 법조계 고위 인물을 모두 수사하고 구속했다. “나는 증거만 찾으면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자서전 <소신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압력은 만만치 않았다. 검찰 내부조직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부서에 파견됐다. 수사를 직접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95년 검사를 그만뒀다. 수사하지 않는 검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자 검사 시절에 구속한 조폭이 찾아와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잇따랐다. 특히 민주당이 공을 들였다. 그러나 홍 의원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다.

▲ 홍준표 의원(출처=페이스북)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해 서울 송파 갑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경남도지사 시절부터 홍 의원을 도운 정장수 전 비서는 통찰력, 혜안, 추진력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도지사 지내실 때 1주일에 한 번 정도 결재 시간을 정했다. 국장 혹은 과장이 결재받으려고 20명씩 줄을 섰는데 1건에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다.”

홍 의원은 16대 총선 때, 동대문구 을에서 당선되고 같은 지역구에서 3선을 했다. 당시 주택정비사업으로 청량리 일대를 재개발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아내 이순삼 씨는 “남편에게 대통령도 못 지키는 공약을 어떻게 해낼 거냐고 말했다. 그런데 지키더라. 본인이 약속한 걸 지킬 때 가장 뿌듯해 한다”고 말했다.

‘부자에게 자유를, 서민에게 기회를.’ 홍 의원의 대표 철학이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출마선언문의 첫마디 역시 ‘당당한 리더십, 서민대통령 홍준표’였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서 서민 정책에 관심이 많다.

그는 19대 대선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후여서 당 지지율이 낮았다. 정 전 비서는 그를 말렸다. 홍 의원은 “내가 지금까지 당에 은혜를 많이 입었다. 당이 어려우니 이제 내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이 유튜브 채널 이름은 ‘TV홍카콜라’다. 옳고 그름을 속 시원히 말하는 모습에서 따왔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행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9월 24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홍 의원은 “옳은 말이라면 눈치 보지 않고 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희망캠프 정책자문단장)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요약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인은 본인에게 손해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홍 의원은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거기에 정치 감각이 더해져 예리하게 문제의 핵심을 말한다.”

홍 의원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규탄하며 8월에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20대 지지자가 편지를 건넸다. ‘국민 바보가 되어 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아내에게 바보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 20대 지지자가 보낸 편지(출처=여명 희망캠프 대변인 페이스북)

홍 의원은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G7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공약 키워드는 공정, 개혁, 선진국이다. 쿼터 아파트제, 사법시험 부활, 흉악범 사형 집행, 공매도 폐지 등. 기존 질서를 뒤바꾸는 내용이다.

제성호 교수는 정치 경험이 홍 의원의 무기라고 했다. 다양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공약을 충분히 관철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여 대변인 역시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홍 의원의 장점으로 경험을 꼽았다. “경남도지사로서 강성 노조, 비대해진 행정 권력, 세금 재정 등을 이미 접한 경험이 있다.”

홍 의원은 파란색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빨간색만 좋아하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다. 대선에서 강조하는 정신은 통합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제도를 마련해서 소득, 세대, 정치 분열을 없애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겠다고 한다.

오랜 정치 생활을 힘들어한 적은 없었냐고 물었다. 홍 의원을 10년 동안 지켜본 정 전 비서는 그가 어려운 국가 상황에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본인이 이 나라에서 할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말한 공약이나 발언은 꼭 지키려고 한다.”

두 번째 대선 도전. 출마를 선언하면서 홍 의원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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