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주 씨(25)는 취업 준비 시간의 대부분을 카페에서 보낸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이력서를 쓰거나 강의를 듣고 가끔은 스터디 조원과 함께 공부한다.

그는 서울 강남 학원가의 카페를 찾은 적이 있다. 평이 좋은 곳을 검색해서 갔지만 1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나왔다. “테이블이 작고 낮아서 책을 둘 수가 없고, 허리를 굽혀야 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유 씨의 말이다.

상업공간을 디자인하는 더비랩(Durbylab)의 전현상 대표에 따르면 낮은 테이블이 카페 인테리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서울과 경기권 카페의 인테리어를 10년째 맡았는데 요즘 의뢰하는 곳의 70%에 낮고 단순한 가구를 배치했다고 한다. 테이블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그의 말처럼 취재 과정에서 의자와 테이블, 즉 앉는 곳과 음식 놓는 곳을 같은 높이로 만든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유가 뭘까?

▲ 서울지하철 3호선 신사역 근처의 ‘카페휘엘’(왼쪽)과 2호선 이대역 근처의 ‘벤치커피스튜디오’

오펜스컴퍼니(Offence Company)의 김용주 대표는 카페 창업에 대해 컨설팅하면서 카페 4곳을 운영한다. 그는 “테이블과 의자가 일종의 오브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에는 쉬기에 편한 가구를 놓았다면, 이제는 공간을 이루는 구조물 기능을 하는 가구로 놓는다는 뜻이다.

가구가 작고 낮으면 다른 인테리어 요소가 돋보인다. 크고 편한 의자 대신 정육면체 의자가, 넓고 높은 테이블 대신 작고 낮은 테이블이 늘어난 이유다.

브랜딩컨설팅 업체인 빅크래프트(Big Craft)의 이종철 대표는 “카페를 찾는 사람이 이제 커피의 맛은 물론이고 카페의 공간 또한 향유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공간이 주는 느낌, 혹은 해당 공간에 머물렀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좇는다는 얘기.

서울 강남구의 카페 ‘얼아츠’에서는 큰 창과 투명 유리문을 통해 나무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자연에서 휴식하거나 힐링하는 느낌이 든다. 낮은 테이블과 작은 의자는 풍경을 가리지 않고 내부 공간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 의자가 작고 낮으면 큰 창과 바깥 조경을 가리지 않는다. (출처=카페 ‘얼아츠’의 인스타그램)

카페에 사진을 찍으러 가는 젊은이가 늘면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라는 표현이 생겼다. 독특하거나 먹음직스러운 음식 모양, 사진에 잘 찍힐 만한 분위기가 소비 기준이 되고, 인테리어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카페에서 제가 먹은 음식 말고도 그날 저의 패션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싶은데, 테이블이 높으면 상반신만 보여 온전히 담기 힘들어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은 SNS 이용자가 패션과 스타일을 보여주는 전신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했다. 높은 테이블은 하반신을 가리니까 전신을 찍기 힘들다. 낮은 테이블에서는 다양한 포즈와 각도로 전신 촬영이 가능하다.

▲ 기자가 낮은 테이블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신을 쉽게 담았다.

테이블이 낮아지는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카페 이용자는 대화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오래 머문다. 식사하고 바로 나가는 식당보다 회전율이 낮다.

상황이 이러니 업주는 회전율을 높이려고 낮은 테이블에 눈을 돌린다. 허리를 굽혀야 하는 낮은 테이블, 등받이가 없거나 딱딱한 의자를 배치하면 고객이 오래 머물기 힘들다.

특히 카페에서 공부나 작업을 하려면 책과 컴퓨터를 테이블에 놓아야 한다. 낮고 작은 테이블에서는 어렵다. 게다가 공간을 덜 차지하는 가구를 놓으면 테이블을 하나라도 더 넣을 수 있어서 매출에 도움이 된다.

▲ 낮은 테이블에 대한 반응(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

카페에서 만난 취재원은 낮은 테이블에 대해 ‘트렌디하고 힙하다’, ‘SNS 시대에 사진 잘나오는 장소만큼 좋은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에는 의자보다 테이블이 낮은 카페가 싫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낮은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그림을 함께 올리며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감하는 댓글이 다수 달렸다.

직장인 전범수 씨(26)는 “아메리카노 한잔 놓고 3시간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을 봤다”며 “카페도 돈 벌려고 하는 장사인데, 사장으로서는 그런 사람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김문희 씨(50)도 “동네에서 지인과 커피 마시고 수다 떨러 갔는데, 옆에 공부하던 학생이 눈치를 줘 금방 나왔던 적이 있다”며 “휴식하러 가는 사람이 많은데 (몇 시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하는 사람만 배려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누구는 카페에서 오래 공부하는 카공족과 업무를 처리하는 코피스족을 영업에 방해가 되는 ‘민폐 손님’으로 본다. 누구는 허리를 숙이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낮은 테이블을 놓은 카페 사장을 ‘매출만 신경 쓰는 장사꾼’으로 본다.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근처의 ‘스타벅스’(왼쪽)와 ‘할리스커피’

서울 서대문구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학생이 많은 상권 특성을 염두에 두고 인테리어를 했다. 예를 들어 ‘할리스커피’와 ‘이디야’는 대부분 1인 좌석 또는 책상형 테이블을 배치했다. ‘스타벅스’ 역시 1인 좌석 그리고 높은 테이블이 다른 지점보다 많았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의 몇몇 카페는 낮은 테이블과 높은 테이블을 고루 넣었다. 어쩌다 들르는 고객과 회사업무를 처리하는 직장인을 같이 고려한 전략으로 보인다. 시장은 결국 고객의 특성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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